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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고교 동창회를 가다
2002-06-20

개인적인 이야기

몸이 맛이 가는지, 참 희한한 일을 겪었다.

72년 보성고등학교를 62회로 졸업한 뒤 동창회란 데를 나가본 적이 없었다. 중뿔나서가 아니다. 징역 사느라 군복무 하느라 연락이 끊겼고 제대 뒤에는 구류에 수배에 또 무슨무슨 일에 도무지 어수선한 인생을 산 터라, 더군다나 공개단체 일로 ‘모임’이란 말만 들어도 신물이 넘어오는 심각한 사태니 ‘동창회 습관’이 싹부터 잘렸던 것.

그래서 30년 만의 홈커밍데이 때도 가지 않았는데 이승철이 전화를 한다. 그는 평소 천하대장부 마음씨로 나를 주눅들게 하면서 학교 운영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동기동창. <벼룩시장> 부사장이다.

야, 우리 담임 이용태 선생님 말야, 이민 갔다가 들어오셨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방문이 되실 것 같아. 그래서 3학년 2반만 따로 한번 더 모이기로 했거든….

거참 신기하군. 한달 전쯤인가, 그땐 ‘홈커밍데이’ 얘기도 없었을 땐데, 고등학교 시절 그 선생님 댁에 갔다가 먹었던 딸기 셔벗 맛이 느닷없이 생각나서 마누라한테 해달라고 졸랐었는데…. 그런 속생각을 하다가 나는 가겠다고 답을 했다.

장소는, 명동 ‘신정’ 알지?… 알아…. ‘길치’인 내가 왜 좀 자세히 물어보지 않고 어렴풋이 안다고 생각했을까? ‘신정’을 찾는 데 30분 넘게 걸렸다. 오줌이 급해 ‘고장’이란 표시판도 못 보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갇히는 봉변도 당했다.

동창들은, 건재했다. 30년 만이라 얼굴을 못 알아보는 수도 있지만 형님 같던 놈은 여전히 형님 같고 양아치 같던 놈은 여전히 양아치 같고, 좋았다. 스무명이 채 안 됐지만 정보회사 차린 놈, 대기업 다니는 놈, 은행 지점장에 주식장사만 하는 놈, 학생회장 출신에 나같이 왜소한 ‘만년 1번’(키가 작고 왜소해서)짜리에 서울대 교수까지 있으니 동창회는 갤럽 표본조사보다 더 정확하게 세상의 축도를 반영했다.

선생은 얌전히, 유쾌하게 늙으셨다. 술기운이 도도해지고 선생 별명(‘똥자루’)이 난무하고 30년 세월이 흉금을 허물어버린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고….

여기가 어디지? 맞아. 졸업식날 이용태 선생과 작별하고, 아버지가 여기서 샤브샤브를 사주셨다. 30년이 뭉텅 잘려나갔다. 30년 만의 동창회가 30년 전 동창회로 되는 순간이었다. 아, 허망한 세월 앞에, 힘내라 동기동창들. 김정환 / 시인 ·소설가 maydapo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