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이 기획한 <묻지마 패밀리>는 세편의 중편을 한데 모으고 있다. 다 다른 영화지만 배우를 비롯하여 서로 연결되는 고리들을 가지고 있다. 장진의 기획력. 감독은 다 다르다. 박상원, 박광현, 이현종 세 감독 모두 신인이다. 색깔도 모두 다르다. 박상원이 감독한,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인 <사방에적>은 장진 냄새가 가장 짙게 풍기는 작품이다. 시나리오가 탄탄하다. 이 영화는 장르영화적 클리셰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장진이 그걸 가지고 논다. 두 번째 영화는 박광현이 감독한 <내나이키>. 세 작품 중 가장 감각적이고 자연스럽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 번째 영화는 이현종 감독 작품인 <교회누나>. 연애영화다.
이렇게 다 다른 색깔을 지닌 영화지만 음악은 한 사람이 맡아 했다. 한재권. 그는 이미 여러 번 소개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영화음악가. 이번에도 그런 면모를 보여준다. 세편의 영화 가운데 음악적으로 가장 탄탄한 영화는 <사방에적>이다. 마지막 박자에서 오픈되며 반복하는 하이 햇 심벌과 업비트로 시작하는, 우리의 귀에 조금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을 주는 테마, 그리고 냉혈적인 느낌의 쿨 브라스 섹션과 워킹 베이스 프레이징이 어우러진 메인 테마는 상당히 공을 들인 트랙이다. 왠지 복도 신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이 음악은 브라스도 시원하고 장르영화적 진행을 음악적으로 암시하고 유도하는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 다른 트랙들도 영화 속에서 적절히 등장하면서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다.
두 번째 영화의 음악은 조금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느낌을 준다. 메인 테마를 연주하는, 어눌한 느낌의 아코디언 소리를 내는 신시사이저는 즐거운 기분으로 추억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우스꽝스러움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그 이외의 트랙들은 그보다 덜 인상적이다. 어딘지 이런 분위기의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옛날 느낌을 내기 위해서는 동요 <땡그랑 한푼>이 편곡되어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 코믹하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미디 작업한 분위기가 조금 많이 난다.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당대의 사운드를 차용할 필요는 없지만, 당시의 기분을 되살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영화인 만큼 최소한 그때의 사운드와의 관련성 정도를 깊이 고민해보는 작업은 필요했을지 모른다.
세 번째 영화는 교회에서 만난 누나를 사랑하는 어느 이등병의 휴가기이다. 교회 종소리와 교회 오르간 소리를 동원해 교회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밝고 코믹하다. 그렇지만 연애영화이므로 감상적인 느낌도 살려주어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상쾌함을 잃어서도 안 된다. 조금은 복합적이라 할 이런 분위기의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재권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접합점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내고 있다. 그런데 역시 급하게 만든 듯한 느낌이 있다. 평범한 라인 바깥을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그냥 분위기를 따라가 주고 있다. 하긴, 우리나라의 영화음악가들(외국도 거의 마찬가지겠지만)처럼 서둘러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또 있으랴. 오늘 테이프 가져다주면서 내일까지 해내라는 식이니. 장르영화의 경우는 어차피 클리셰들의 연쇄들을 어떻게 잘 짜맞추어 내느냐가 관건이므로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영화음악 분야가 점점 공장도 생산라인을 갖추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