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Resume: 이전 플레이 지점에서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8년 전, 모아나와 마우이가 작별할 때 “빠이~ 안녕~” 대신 “또 만나”라고 인사를 건넨 건 이들의 여정이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흘렸다. 기실 그대로 영영 작별하고 이야기를 끝내기에는 모아나와 마우이의 합이 꽤 근사했다. 낭만적인 사랑이 빠진 자리에는 끈끈한 전우애가 들어섰다. 속편은 전작의 인기에 기반하는 만큼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무엇을 유지했고, 무엇을 바꾸었고, 무엇을 발전시켰는지…. 대응하는 각도를 조금 바꾸면 새로운 감상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아나2>를 통해 오히려 전작 <모아나>에서 놓쳤던 점을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모아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어필했다. 린마누엘 미란다의 존재감이 컸다(그래서 <모아나2>에서 그의 이름이 빠졌을 때 맥 빠져 하는 반응도 나왔다). 뮤지컬 넘버의 중요성을 부각하려는 의도였는지, “노래하지마”(마우이가 노래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모아나를 향해)/ “노래하겠어”(코코넛크랩 타마토아가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뽐내려 “샤이니”를 부르려 할 때)라는 대사가 유독 잘 들렸다. 공동감독 존 머스커와 론 클레먼츠의 존재감도 언급되곤 했다. <인어공주>(1989)로 디즈니 르네상스를 열었던 그들이 3D애니메이션에 도전했다는 것이 강조점이었다(이들 또한 이번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정작 그래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 3D를 소화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이야기하지 않았다.
흔히 범작에 머무는 작품들은 초반에 세계관 구축을 위해 많은 힘을 쏟다 보니 본격적인 퀘스트가 펼쳐질 때에는 이미 힘이 떨어지고 그래서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필수적인 사건의 전개를 훌렁훌렁 넘기다가 마지막에는 뱀꼬리로 마감하곤 한다. 하나 <모아나>는 꽤 괜찮은 도입부로 선방한 후, 힘을 잃지 않으면서 진정한 매력을 펼쳐냈다. 작품의 3분의 1 지점에서 등장한 마우이는 식상한 반인반신 캐릭터가 아니었다. 허당기 충만하면서도 꽤나 시니컬한 히어로였다. 드림웍스에서 디즈니를 디스하기 위해 내세운 슈렉을 연상시킬 정도로, 마우이는 꽤나 전복적인 캐릭터에 가깝다. 마우이가 모아나를 ‘공주’라 불렀기에 그 유명한 “난 공주가 아니야”라는 대사가 나올 수 있었다. 모아나에게 “노래하지마”라고 말한 지점도, 그 상황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멋진 노래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그러면서 얼렁뚱땅 다음 스토리로 넘어가는) 타이밍이었다. 어쩌면 극 중 모아나보다 더 당황한 건 그 장면을 바라보며 뮤지컬 신을 기대한 관객이었을 수 있다.
작품의 절반 지점에서 모아나와 마우이가 맞닥뜨린 카카모라와 거대 함선도 차별점을 지닌다. 그저 잠깐 지나치는 흥미로운 괴물 캐릭터에 그치지 않는다. 전투 장면에서 보여지는 캐릭터와 카메라의 움직임, 전투의 전개와 동선, 무기의 활용법과 타격 효과, 범선의 합체와 분리 등은 <모아나>가 기존의 애니메이션 관습에서 벗어나 오히려 게임의 문법에 가깝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제껏 모아나의 여정을 도와주던 (파도로 형상화된) ‘바다’의 역할이 달리 보인다. 평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필요할 때 나타나서 안내와 도움을 주는 바다는 NPC(Non-Playable Character) 그 자체가 아닌가? 모아나와 마우이가 카누에서 벗어날 때마다 기어코 그들을 제자리로 원복시키는 역할을 기억해내보자. 이런 식으로 풀다보면 상대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면서도 자신의 갈고리라는 ‘공격 아이템’이 없으면 이렇다 할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마우이는 게임 캐릭터의 설정과 닮아 있다. 태피스트리와 문신을 통해 재현되는 전투 진행 장면도 게임 플레이 영상(이때는 좀더 고전적인 2차원 아케이드게임 장면)과 닮았다, 등등….
전작의 징후들은 <모아나2>에서 확실하게 강화됐다. 플롯의 시간표는 변함없이 예정된 절차를 따박따박 밟는다. 모아나의 귀환에 첫 10분, 새로운 퀘스트 소개에 그다음 10분, 퀘스트를 함께할 파티원 구성에 10분. 그러고 나서 작품의 3분의 1 지점에서 모아나 원정대가 카카모라 함선과 마주치고, 절반 지점에서 마우이와 재회한다. 전작과 차이라면 카카모라 함선과 마우이의 등장 순서가 바뀐 점(그리고 카카모라의 성격이 바뀐 점). 표준화된 시나리오 시간표를 정석대로 따르면서도 전개는 경직되지 않고 경쾌하다.
예상하는 사건이 일어나지만 장면은 기대치를 조금씩 상회한다. 팀플 기반의 1인칭 슈팅 게임을 연상시키곤 한다. 이번에도 전투 아이템에 대한 설정은 분명하다. 조개 괴물의 급소를 노리고 던져야 할 독화살은 ‘단 한발’에 그쳐서는 안된다. 납득 가능한 무기템 수량, 세발이 허용된다(편법이 개입하기는 한다). 게임적 상황을 부각하는 설정은 계속 나온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우이의 문신에는 스코어가 기록, 저장된다. 여정이 어려워짐에 따라 카누도 도중에 업그레이드된다. 무엇보다 파도-바다의 개입이 차단된 채, 박쥐여인 마탕이의 “지도 없이 진행하라”는 명령은 <모아나>가 튜토리얼 레벨이었음을, 그리고 <모아나2>는 (마우이가 모아나를 ‘레벨업’되었다고 칭찬하듯) 쪼렙을 넘어선 레벨임을 주지시킨다.
확실히 <모아나> 시리즈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으며(이번 작품에서도 원정대원 켈레는 연신 “노래는 안 할란다~”라고 거부한다), 3D애니메이션은 2D 기반의 고전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대신 게임의 어법을 점점 더 많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이전까지 디즈니의 스토리텔링은 신화에서 출발하여 자신들의 비법 소스를 곁들여 달착지근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으며, 작품의 감흥을 테마 파크에서 오감으로 확장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영어덜트 관객은 게임을 통해 신화를 맛보는 게 더 익숙하다. 애니메이션은 인 게임 상황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그다음 단계이다. 예전에 디즈니는 <주먹왕 랄프>(2012)에서 게임 속 캐릭터와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다루기는 했다. 하지만 소재로 차용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 게임이 서사를 구축하는 방식을 애니메이션과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그사이 시네마는 ‘시네마틱’이라는 말로 변용되었다. 게임 엔진이 실시간 플레이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데 특화되면서 그래픽적, 연출적 충실도는 ‘시네마틱 트레일러’라는 컷신으로 분리, 보완되어야 했다. 때론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중간에 ‘인 게임 시네마틱’이 개입하기도 하고, 방금 전의 플레이 상황이 ‘리플레이’ 장면으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모아나의 액션, 전투 신이 어딘지 낯익으면서도 새로워 보이는 까닭은 우리의 경험이 게임과 애니메이션/영화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플레이 상황에서 잠시 유보했던 영화적 연출, 스토리텔링의 디테일, 캐릭터의 감정선 등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충된다.
모아나의 모험이 계속되는 건 신화 속, 선택된 영웅의 운명이기도 하지만 어드벤처게임의 숙명이자 존재 자체이기도 하다. 성마른 누군가는 “결국 게임이 애니메이션/영화를 대체할 것이다”라고 예언자처럼 말할 테지만, 그럴 일은 이번주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모아나> 시리즈는 달라진 신화 스토리텔링의 모델을, 현재의 관객에게 익숙한 게임적 경험을 통해 보여주려 모색한다. 바로 그 지점이 아주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모아나2>를 보고 나니 <모아나3>가 기다려진다. 이왕 켠 김에 최종 보스까지 가보는 것, 이게 강호에 나선 영웅이라면 의당 품어야 할 호연지기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