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언니. 생일 때 찾아오려고 했는데 지금에서야 오게 됐어. 미안해. 어떻게 지냈어? 요즘은 해가 쨍쨍한데도 비가 오고 벌건 날씨는 푸르러질 생각을 안 해. 그래서 때때로 시원한 맥주로 낮술을 마시면서 벌겋게 익기도 해. 유난히 더운 올여름, 언니는 무슨 과일이었을까? 여름과 참 잘 어울리는데. / 하늘을 자주 올려다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색이 참 맑고 이쁘더라. 나한테 하늘은 유정이야. 오늘 지는 노을을 보고 (어느 색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파스텔의 유정을 떠올릴게. 내 바람일 수도. / 지나간 ‘색’을 모으면 아주 두꺼운 책이 될 것 같아. 그것이 유정을 향한 내 사랑과 그리움의 아우성일 거야.
2023년 8월1일, 민하가.
나의 유정. 나는 미국에 2주 정도 머물다가 왔어. 여러 사람들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도 보냈어. 왠지 모르게 외국에 나가면 언니 생각이 더 진하게 나. 밴쿠버로 떠날 때 언니를 놓고 왔다는 생각이 아직 깊이 남아서일까. 이제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해가 뜨면 언니를 보러 갈 거야. 우리 또 많은 이야기 나누자. 언니가 줬던 I ♡ NY 인형이 아직 있어. 그래서 뉴욕에 있을 때 언니가 더 더 많이 생각났나? 히히. 유정의 향기가 깊은 가을이다. 차갑지만 따뜻하고 이슬이 한 가득 맺힌 것이, 유정을 보는 듯해. 매일 사랑하고 보고 싶다고 외치지만, 오늘은 더 특별히 소리치고 싶다. 사랑해, 유정. 태어나줘서 고마워.
2021년 11월20일, 민하가.
언니! 나는 캐나다 무사히 잘 다녀왔고, 격리 끝나자마자 언니를 보러 가. 정말이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한국에 오니 언니의 부재가 더 크게 느껴져. 사실, 더 안 믿겨지는 요즘이야. 안 믿겨지면 안 믿겨지는 대로 온전히 느끼는 중이야. 그만큼 언니가 내 가슴에서 더 열렬히 숨 쉬고 있다고 믿으면서. 슬픔이 크고 그리움이 사무치지만. 살아갈 ‘력’이라고 생각할게. 아직도 사랑한다며, 술이 취해서는 내 볼에 뽀뽀해줄 것 같은 유정 언니. 살갗과 온기가 느껴져, 보고 싶다. 사랑해 언니. 언제나. 지금도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겠지? 어떻게 된 게 언니를 보러 가는 날이면 비가 오네. 진심으로 가득 찬 언니의 맑은 눈동자 같아.
2021년 4월28일, 민하가.
유정에게 쓴 수많은 편지들 중 3장을 가져왔다.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렇지만 유정은, 내 마음속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 영롱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어찌 그녀를 뽐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계절의 바람에서 자유롭게 흐르고 있을 그녀를.
유정은 타고난 분위기 메이커였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구성원 한명 한명의 상태를 확인하고, 상황에 맞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주도하기도 하는 탁월한 진행자. 아무리 칼 같은 말을 해도 고유의 사랑스러움이 그 날카로움을 감싸안아 뭉툭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그런 존재다. 그녀에게 사랑스러움은 그녀의 능력이었다. 눈치도 빨라서 가끔 술에 취해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목소리가 높아질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불씨를 꺼버리는 것도 늘 유정의 몫이었다. 우리에겐 유정이 있어야만 했다.
이쁘기는 또 얼마나 이쁜지, 유정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남성들도 꽤 많았다. 생기가 그득한 눈, 오뚝한 코, 활짝 웃는 미소와 또 그와 살짝 상반된 너털웃음은 모두를 매료시켰다.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유정의 웃음소리가 녹아 있는 동영상은 언제 봐도 꽃밭 같다.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마법 같은 그녀의 목소리와 미소. 인기가 없으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의리도 아주 높게 생각해서, 입도 무겁고, 친구들의 고민을 진중하게 들어주었다. 그래서 유정에게 은밀한 고민 상담을 하는 친구들도 갈수록 늘어났다. 아마 그녀는 우리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모두에게 선물 꾸러미 같은, 어디서나 빛나는 존재였다. 나의 편지에서도 느껴겠지만, 유정은 어느 계절에나 잘 어울렸다. 좀 더우니까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실까? 찬바람 솔솔 부니 국물에 소주 한잔할까? 하며 시시콜콜한 핑계를 대며 자주 만났다. 또 하나의 계절을 보내며, 쓸쓸히 부는 바람을 마주하는 것이 유정이 찾아왔나보네, 하며 고마운 마음에 발걸음을 늦추며 느린 귀가를 하는 밤이 잦아진 요즘이다.
유정을 떠나보낸 지 3년이 넘었다. 그리움이란 그녀를 살리지 못한 대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유정은 우리에게 아주 큰 사랑과 목숨을 하나씩 더 주었다는 것. 모든 진실된 마음을 닿을 수 있게끔 해주는 소중함과 간절함을 일깨워줄 시간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그렇기에 내게서, 특별하고 고귀한 사랑이 되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가끔은 펑펑 울어도 결국엔 안도감일 것임을 그녀는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번 글을 편지로 시작한 이유는, 어떠한 설명보다는 마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과 진심을 꾹꾹 눌러담은 편지를 (많이 쑥스럽고 개인적이고 용기가 필요했지만)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당신의 그리움, 향수, 사무침, 미련, 모든 것들은 찬란하게도 용감하다. 그러니, 끊임없이 보고 싶어 하는 당신은 참 멋지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반짝반짝 천방지축 유정 언니는 지금 어디에선가 다시 태어나고 있겠지? 다시 만나자 우리.
2021년 3월29일 민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