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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답안지는 여러 개, 윤리와 딜레마를 발판 삼은 동시대적 질문, <베테랑2>
이자연 2024-09-25

2015년,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통쾌하게 체포한 서도철(황정민)이 9년 만에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과 밤낮없이 일하며 자기만의 정의를 계속 실천해나간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 속에 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사람들이 열광하는, 또 다른 정의 ‘해치’다. 해치는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건의 가해자를 찾아가 그가 저지른 일을 그대로 되갚아준 뒤 살인으로 마무리하는 끔찍한 연쇄살인범이다. 반복된 솜방망이 처벌에 불신이 커진 대중은 이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두고, 선악을 구별하여 정의를 이루는 전설 속 동물의 이름을 붙였다. 해치를 잡기 위해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까지 팀에 합류시킨 서도철은 시원한 성격답게 단서를 빠르게 추적하지만 함정에 빠진 듯 자꾸만 다른 사람을 해치로 오인한다. 한편 <베테랑2>는 서도철의 삶에 더 깊이 관여한다. 서도철의 질주를 자극하기 위해 아내 주연(진경)의 따끔한 한마디를 빌렸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오랜 형사 생활로 도철네 가족이 짊어져야 했던 묵은 응어리를 드러낸다. 아들의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도철이 건넸던 무심한 말들은 아들의 학폭 가해 소식으로 돌아오고, 도철은 온전히 사건에만 집중하기가 어렵다.

2024년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공식 초청작 <베테랑2>는 전작의 장점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전작의 아쉬움과 한계를 보완하려는 야심을 발휘한다. 조태오와 서도철 사이에서 선과 악을 극명하게 분리했던 전작은 일명 ‘사이다 감성’으로 엔터테인적 요소를 높이지만 그 이면에 놓인 악행과 처벌에 대한 성찰을 충분히 논하지 못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관객에게 심도 깊은 질문을 건넨다. 사적 제재를 정의라 말할 수 있는가, 정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정의라고 판단내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그들은 정의로운가…. 쉽게 답하기 어렵지만 한번쯤 돌이켜볼 만한 논제를 류승완 감독 특유의 무게로 편하게 전한다. 특히 SNS와 라이브 방송 포맷을 통해 이를 검열 없이 소비하는 대중의 세태를 꼬집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다만 묵직한 메시지와 스토리 속에서 어떻게든 웃음을 터트리고자 애쓰는 과잉의 코미디나 2015년의 영광을 재현하듯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무른 대사들은 도리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서도철이 직면한 윤리적 딜레마와 아들의 이야기가 투 트랙으로 이어지면서 보는 이에 따라 극적 전개가 다소 어지럽게 다가오는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류승완 감독은 서도철이 느낄 물리적·심리적 압박을 전작보다 배로 키워 묵직한 무게를 전하는 데 성공한다. 동시에 액션이라는 장르의 묘미도 십분 살렸다. 극 중 이종격투기를 중요 요소로 선택한 만큼 활극의 역동성과 전투의 난이도가 한층 높아졌는데, 특히 도심을 가르는 파쿠르와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빗속 전투 신은 범죄 오락 영화로서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촬영 방식도 과감하다. 서도철과 박선우의 교묘한 눈치 싸움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는 이들의 얼굴, 눈동자를 주로 확대한다. 누가 진실을 가리고 있는지, 누가 거짓 뒤에 숨어 있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한 영화의 포인트를 녹여낸 연출은 액션 쾌감을 극대화한다.

close-up

<베테랑> 시리즈의 새로운 얼굴 정해인의 박선우 캐릭터 분석이 무척 촘촘하고 예리하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 남산서울타워 광장에 모인 무수한 인파 사이에서 해치 용의자를 발견한 (이상하리만치) 온화한 표정은 오직 정해인만이 그려낼 수 있는 고유한 것이다. 문제 상황을 한눈에 알아채고서 눈빛에 생기가 도는 그 짤막한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는 긴 응시가 진짜 박선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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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마와 리> 감독 류승완, 2000

2000년 12월14일, 류승완 감독이 인터넷에 직접 공개한 복고풍 단편영화. <베테랑2> 초반, 류승완 감독 특유의 과잉된 코미디가 다소 붕 뜨게 느껴진다면 그의 원형으로 돌아가보면 어떨까. 오히려 직진을 선택했던, 어린 시절 류승완의 발칙하고 저돌적인 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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