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책 제목을 읽고 나는 순간 다소 경박하게 소리내 웃고 말았는데, 영화 제목 <헤어질 결심>이 (<헤어질 결심>의 제작 과정을 담은) 사진집 제목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으로 바뀐 언어유희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집의 제목은 ‘나는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만들었는가’의 맥락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지?’처럼 경악을 동반한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게,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한 거야, 혹은 만든 거야? 박찬욱 감독이 쓴 서문에 따르면 <헤어질 결심>은 팬데믹 기간을 관통하여 2022년 5월 경기도 파주에서 완성되었는데, 그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찍은 사진들 중 일부를 골라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에 실었다고 한다. “내 주장에 의하면 모두 제작 현장 사진이다.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만들까 대개 그 생각만 하던 때였으니 어디를 가나 내게는 현장이었다는 말이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사진작가로서의 활약을 오랫동안 지켜봐온(<아가씨>의 촬영 현장 사진을 담은 <아가씨 가까이>와 같은 책을 눈여겨본) 이라면 이번 책을 반갑게 맞으리라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의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자. 이 책은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를 가지러 가는 여행 기록으로서의 사진집으로, “어디 먼 나라로 떠나 때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면서 끝내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마주친 아름다운 풍경을 재빨리 스케치해두기도 하고 어느 밤에는 흥이 올라 멋대로 끼적이기도 한 공책을 상상하라.” 설명이 달린 사진도 있고 없는 사진도 있는데 자유롭게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사진. 시체가 놓인 베드가 없는 부검실 아닌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데 맞다는 가정하에, 시체 없는 부검실도 부검실인가? 진짜 부검실이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세트일 것이고, 시체 더미가 없다면 그곳을 부검실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이 사진집을 보면서 또한 새삼 발견하게 되는 피사체는 배우의 얼굴이다. 빛이 신묘하게 깎아낸 배우의 얼굴에 드리운 음영은,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지녔던 삶의 굴곡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이 없는 숲이나 나무, 바다 사진 또한 흥미롭다. 영화에 등장한 바로 그 장소인지 알 수 없는 이런 사진들은 영화 바깥의 장소와 사람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작진이 서성였고, 관광객이 어슬렁거렸을 풍경의 뉘앙스를. 컬러 사진이 담긴 책의 전반부에는 사진 설명이 없고 흑백 사진이 담긴 후반부에는 사진 설명이 있다. 다 읽고 나면 과연 이래서 설명이 있거나 없어야 했다고 느끼게 된다.
기차표나 박물관 입장권 따위, 심지어는 단풍 든 이파리 같은 것도 붙여 둔, 그런 식으로 가로 이미지와 세로 이미지가, 흑백과 컬러가, 객관과 주관이, 인물과 풍경이, 산문적인 사진과 시적인 사진이 섞였다.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