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이미지를 전시하는 인터넷 게시물에 유독 ‘대유쾌 마운틴’이라는 밈이 자주 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로봇공학 분야의 오래된 이론인 ‘언캐니 밸리(불쾌한 골짜기) 가설’에 따르면 인공물은 어설프게 인간을 닮으면 오히려 불쾌감을 준다고 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가상인간의 이미지가 실제 인간의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잘 만들어져서 더이상 불쾌감을 주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그 표현을 사용했다. 깊은 골짜기를 빠져나와 드디어 산 정상에 도착한 이들의 쾌감과 흥분이 느껴졌다.
신나 하는 사람들을 보며 괴로웠었다. 그들이 인공지능으로 만든 이미지 속 인간은 거의 대부분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연령대, 얼굴과 표정, 몸짓, 그리고 복장 등 모든 것이 비슷비슷한 여성들. 그곳에는 쇼트커트를 한 여자도, 주름진 얼굴로 흰머리를 쓸어 올리는 여자도, 정장 차림을 한 여자도, 땀 흘리며 달리는 여자도, 기골이 장대한 여자도, 중장비를 운전하는 여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자도, 법정이나 진료실에서 일하는 여자도, 분노로 가득 찬 눈을 가진 여자도 없었다. 실제 여성은 열거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모습인데 인공지능이 창조한 가상의 여자들은 놀랍게도 너무나 닮아 있었다.
대유쾌 마운틴에서 기뻐하던 이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떠한 나쁜 의도도 없이 인공지능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시험하거나 사용법을 익히려는 용도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수많은 여성들의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로 보였다. 원하는 대로 가짜 여자를, 그것도 진짜와 구분하기 어려워 ‘불쾌하지도 않은’ 가짜 여자를 만들어내다니 산에 오르기는커녕 골짜기가 한층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딥페이크 성범죄 뉴스를 보고 들으며 나는 끝없는 불쾌감의 심연에 빠져 있다. 차마 확인해보고 싶지도 않은, 불쾌감을 넘어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 속 여자들이 이제는 가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도 있고 학교도 다니고 가족도 있는 진짜 여자들의 가짜 이미지가 그 이름을 아는 남자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들, 동생이나 오빠, 아들로 불리는 남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그들만의 세계에서 공유되고 거래되어왔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강력하게 처벌받아야 할 범죄다. 이 명백한 범죄를 근절하는 데 ‘대유쾌 마운틴’에서 환호했던 이들이 앞장서주기를 바라고 그러리라 믿는다. 실제 인간을 닮은 인공물을 만드는 것보다 인공물로 인해 실제 인간이 피해를 입고 상처받는 것을 막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인류의 절반이 깊은 골짜기에 빠져 있음을 알면서도 산 위에서 유쾌해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물론 ‘딥밸리’의 여자들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나부터 바닥을 찾아 딛고 일어서려고 한다. 이미 앞서 일어난 이들과 함께 나아가야지. 한 사람도 골짜기에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