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의 노래 <내게 사랑은 너무 써>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아직 전 어리거든요. (…) 한 잎 지면 한 방울 눈물이 나요. 슬픈 영활 보면 온종일 우울해요.’ 이 노랫말은 세상의 감동에 쉽게 마음이 일렁거릴 수 있었던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카타르시스 중독자였습니다. 밤 늦도록 인터넷 세상에서 알게 된 슬픈 노래와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고, 울음이 주는 쾌감에 빠져 점점 더 강도가 강한 감동을 찾으며 즐겼습니다. 가슴이 아프면서도 해소되는 듯한 그 감각은 약간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흡사 매운 볶음면을 먹는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매운 음식 역시 통각의 카타르시스가 있는 장르이지요.
감동은 마치 짜릿한 전기처럼 몸과 정신의 어딘가로 흘러갔습니다. 마음의 전선은 대체 무슨 방식으로 작동하는 걸까요? 어떤 이야기는 아름답고 화려했지만 뭔가 제 이야기 같진 않아서 마음을 스쳐 지나갔고요, 다른 어떤 노래는 시시콜콜하고 보편적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제 마음의 부드러운 안쪽을 박박 찢어버리더라고요. 감동을 통해서 저는 저의 마음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슬픈 영화를 보면 종일 우울할 수 있었던 제 마음은 아주 무한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마음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헤프게 사용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급한 대로 나눠주기도 하고, 삶의 위기 순간에 대처하기 위해 붕대처럼 잘라 썼습니다. 너무 많아서 주체하기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땐 술을 먹으며 술집에 몰래 버렸고, 길거리에 뿌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이 넘쳐나는 마음을 재료로 뭔가를 만들어볼까 끼적이던 것으로 노래를 쓰고 부르기까지 하게 된 거지요.
그래서 언젠가는 더 궁금할 게 없고 뭘 해도 재미있지 않은 순간이 온다고 누군가가 말했을 때, 저는 딱히 믿지 않았습니다. 꼭 한번 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애틋한 뭔가를 떠올리면서 대체 이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냐고 속으로 말대꾸를 했지요. 그런데 무언가를 좋아하고 궁금해할 수 있는 상태는 원래 마음의 기본값이 아니더라고요. 어느새 저는 그게 뭐였는지도 잊어버린 무뎌진 사람이 되어갑니다. 느낄 수 있는 마음만은 넘쳐나는 부자였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빈털터리가 된 걸까요? 활기를 잃어버린 이유를 고민해보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달아나는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이제 뭔가를 깊게 좋아하는 일을 두려워하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아시겠지만 터질 것 같이 행복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관객석의 불은 밝아지고,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고, 시간에 맞춰 집으로 가는 열차를 타러 가야 하잖아요. 다음에 또 좋은 순간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약하는 것이 성숙한 모습이겠지만 사실 저는 감정적인 파티가 끝나고 나면 이런 기분이 듭니다.
‘다시는 파티 따위 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일단 마음이고 뭐고 회피하면서 잠이나 잤습니다. 쇼펜하우어 선생님도 뻘 생각이 들면 그냥 자라고, 그 편이 나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사는 게 꼭 의미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의미 없음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감정에 이런저런 이름표를 붙이며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다 지쳐버려서 그냥 무심히 내버려두었을 그때에 어쩌면 마음은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올해의 여름이 마치 영원한 낮잠을 자는 것처럼 무력하게 느껴졌습니다. 깨야 할 것 같은데 눈이 떠지지 않는 졸음이 이어졌습니다. 아마 여름이 오기 전까지 너무 애썼나 봅니다. 늘어지게 자다가 일어나니 땀범벅입니다.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2000년대 초반에 쓰인 흘러간 발라드를 듣게 되었습니다. 또박또박 쓰인 노랫말, 요즘처럼 빡빡하게 음정 튠을 하지 않아서 서툰 부분까지 다 들리는 가수의 자연스러운 열창이 한여름 속의 택시 안을 울립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초록색 풍경과 에어컨이 내뿜는 낮은 온도, 노래와 이 모든 상황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순간 같은 걸 멍하게 느끼다가 생각합니다. 설마 나 지금, 감동받고 있는 건가…?
그렇게 오랜만에 마음이라는 녀석과 다시 마주쳤습니다. 저 없는 동안에 어디서 뭘 먹고 살았길래 털은 꼬질꼬질하고 몸은 앙상하게 말랐습니다. 길고양이 같은 그 아이는 슬쩍 제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아마 제가 손을 내밀려고 한다면 재빨리 도망치겠지요. 어서 씻기고 간식이라도 먹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저는 그의 존재를 모르는 척 무심하게 약속 장소로 향합니다. 이렇게 작지만 귀중한 순간이 다시 저에게 다가왔다는 것에 은밀히 환호하며 묘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마음은 다시 저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요.
무한한 마음의 시절이 지난 그 자리에 남겨진 작은 마음을 조심스럽게 살펴봅니다. 두렵지만 이 빈약한 마음도 자주 바라봐주고 계속 써야 튼튼해질 것입니다. 자주 청소할 때는 깨끗함이 쉽게 유지되지만 조금 게을리 정리하다 보면 나중에는 대청소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고 나면 몸살이 나기 십상입니다. 매일 조금씩 마음을 닦으려고 하다 실패하고 또 시도하며 마음은 강해질 수 있겠죠. 그렇게 기운을 차린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사랑을 받아야 할 저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고 싶을 때 이젠 두려움 없이 듬뿍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남들이 다 봤는데 저만 모르던 음악, 미술, 영화, 책들을 자신에게 다그치듯 찾아볼 때가 있습니다. 평일의 도서관에는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기 냄새가 납니다. 제가 마음을 잃어가고 있을 때에도 누군가는 샘물을 마시듯 꾸준히 이야기를 읽고 있었네요. 다시 초조한 기분이 엄습해오려 하지만 태연한 척 곧은 자세로 열람실로 들어갑니다. 진지한 얼굴들 속 하나의 모습이 되어봅니다. 저에게는 아직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