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들른 박물관에서 봤던 개미들을 잊을 수 없다. 한구석에 얕게 물이 채워진 수조가 있고 그 안에 큰 잎사귀가 여럿 달린 나뭇가지가 꽂힌 유리병이 두어개가 놓여 있었다. 그 사이를 다리처럼 연결하고 있는 베이지색 굵은 로프와 함께 거의 모든 잎의 가장자리가 톱니바퀴처럼 뜯겨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이 전시물이 뭘까 의아해하며 가까이 가보니 수조의 한쪽에 뚫린 구멍을 두고 로프 위를 양방향으로 줄지어 가는 개미들이 보였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같기도 하고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부품 같기도 했다. 잠깐 동안 진짜 개미가 아니라 혹시 ‘로봇 개미’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작동하는 자연을 보여주는 전시에 감탄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영상 촬영을 하다 보니 다른 모습의 개미들이 눈에 띄었다. 길게 뻗어 있는 나뭇가지 끝쪽에 자기 몸집보다 큰 잎사귀 조각을 물고 모여 있는 개미 무리였다. 가만히 보니 나뭇잎 위에는 더 많은 개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보기에 좀 징그럽기는 했지만 개미들의 먹이 활동 모습일 테니 두루두루 영상에 담았다.
그 후 그날 촬영한 영상을 가끔 꺼내 보면서 감탄이 의문으로 바뀌어갔다. 도무지 떨쳐지지 않는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것도 기괴함, 섬뜩함, 불쾌감 등의 의미를 담은 ‘언캐니’(uncanny)라는 형용사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느낌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언캐니 밸리 가설’에 따르면 로봇은 인간을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정도 이상 인간을 닮은 로봇은 오히려 비호감을 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개미들을 보며 내가 잠시 떠올렸던 ‘로봇 개미’가 지나친 상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진짜 로봇 개미는 아니겠지만 개미의 행동을 통제해서 만든 전시일 수는 있지 않을까? 도대체 인간이 어떤 원리를 이용해서 개미를 통제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제야 (부끄럽지만) 전시를 보는 동안 개미들에게 홀려서 설명 패널을 한 글자도 안 읽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번의 인터넷 검색 후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찾아낸 답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느낀 언캐니함의 완전히 새로운 정체가 드러났다. 개미들을 조종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곰팡이’였다!(내가 방문한 곳이 ‘미생물 박물관’이었다는 사실을 왜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좀비 곰팡이’라고도 불리는 이 곰팡이는 개미의 몸속에 들어가 균사체로 근육을 장악하고 숙주인 개미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곰팡이에 홀린 개미는 집을 떠나 높은 식물 위로 올라가 나뭇잎을 깨문 채 죽음을 기다리거나 우왕좌왕하며 집으로 가는 길을 잃는다. 포자를 더 멀리 퍼뜨리려는 곰팡이의 전략이다. 로봇 개미 아니 ‘좀비 개미’를 만든 이가 인간이 아니라 곰팡이인 것도 충격이었지만 곰팡이의 조종을 받은 개미가 로봇처럼 정해진 길만 가던 개미들이 아니라 잎사귀 조각을 물고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잎 한쪽 면에 착 붙어서 먹이 활동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던 개미들이라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오히려 일정한 경로로 이동하는 것이 개미에게 더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자연스러워서(?) 징그럽다고 느꼈던 행동이 언캐니 밸리에 빠진 개미의 것이라니!
다음에 암스테르담에 다시 갈 일이 있다면 개미들을 또 보러 가고 싶다. 인간이 만든 언캐니한 기술들에 점점 무뎌져 가는 요즘 자연이 만든 언캐니한 자연을 조금 더 진득하게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