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조금도 난 겁나지 않아 - <FANCY>(트와이스, 2019)
종종 인천의 ‘인천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대개 입을 떼기 전부터 실실 웃음을 흘리다가 상대가 반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인천이라는 도시의 저속함에 대해 쏟아낸다. 그들의 묘사 속에서 인천은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장소이며, 거칠고 더럽고 나쁘기만 한 동네다. 그러나 경계라 부를 만한 것도 마땅히 없는 작은 나라에서 어떤 지역이 특별히 거칠고 더럽고 나쁠 수 있는 확률은 몇이나 될까? 아랫동네 사람인 나는 별다른 계산 없이 떠올린다. 오직 멸시를 위해 거칠고, 더럽고, 나쁜 땅이 되는 수많은 고향들을. 그 생각 다음으로는 말이 지겨워진다.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전부 싫다.
송도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던 동안엔 남동공단에 집을 얻어 생활했다. 집값이 싸고 거리가 가까워 출퇴근은 편했지만, 동네가 너무 빨리 조용해져서 해가 저물면 괜히 겁이 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퇴직금을 주기 싫은 회사는 내 자리를 11개월마다 갈아치웠다. 어쩌면 정식 계약을 할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긴 했지만, 출근 10개월차였던 어느 겨울날, 나는 내 자리에 들어올 후임 인턴에게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매니저와 나, 그리고 후임인 S는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매니저는 나를 S에게 ‘남동공단에 혼자 자취하는 애’라 소개했다. 외국인노동자들 많은 동네에서 겁도 없이 용케 잘 버텼다고 격려도 해주었다. 매니저에게 10개월간 들은 말이었다. 누린내 나는 밥을 대충 헤집다가 젓가락을 놓는데 S가 갑자기 말했다. “외국인노동자 많이 산다고 무서운 동네는 아니죠.” 나는 눈이 커지고 매니저는 콧구멍이 커졌다. 높은 턱에 부딪힌 차처럼 덜컹하고 흔들린 매니저는 S의 느긋한 표정을 한참 동안 살피며 그의 말에 어떤 의도도 없음을 확인하는 듯했다.
“S씨는 어디 살아?” 매니저는 갑자기 시험을 보듯이 질문을 했다. 누군가를 경계할 때 내는 불쾌하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S는 볼을 가리키며 밥을 다 먹고 말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음식을 다 씹어 넘긴 S가 “부평이요. 전 부평에서만 평생 살았어요” 하자 매니저는 ‘파’ 하고 웃었다. 그런데 S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에? 왜 비웃으시지? 부평이 동네가 좀 후져서 그런가?”라고 바로 받아치는 바람에 매니저의 콧구멍은 또다시 커졌다. S는 후식으로 나온 요구르트를 마시면서 다음 질문을 미리 들은 듯 묻지 않은 대답도 했다. “저는 ‘지잡’ 나왔고 원래 ‘좆소’ 다녔어요. 여기가 거기보단 좀 커요.” 어떻게 하면 자신이 다니는 직장을 좀더 번듯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매번 대기업과 회사의 ‘친구의 팔촌 동생의 매제의 사돈의 친구’ 같은 네트워크까지 생각해내던 나는, ‘지잡’이나 ‘좆소’가 자아내는 자괴감 따위와 일찌감치 싸워 이긴 듯한 S의 태연한 말들에 죽도록 얻어맞았다. 나의 고칠 점을 일기에 빽빽하게 기록하던 때였다. 고작 11개월마다 어린애들을 내쫓는 회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업무 인계를 하는 2주간 나는 S와 붙어 지내며 그에게서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부평과 구월동의 ‘노는 물’ 차이, 남동공단 떡볶이의 유명세, 중고 컨테이너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직원 두명을 밤새 착취하던 첫 직장, 근무 중에 술을 마시고 매일 직원들을 향해 폭언하는 사장을 때려서 고소당한 사연, 공장 뒤편에 붙어 있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입니다’라는 현수막이 한 중년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죽은 일 때문이라는 것까지. S는 자기 자신을 자주 ‘개돼지’라 불렀고 집에서 스스로 요리를 해먹지 않는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인수인계 마지막 날. 매니저가 송별 인사 대신 보내준 스타벅스 쿠폰을 커피와 바꾸면서 나는 S에게 물었다. “어쩜 그렇게 매사에 무덤덤할 수 있어?” S는 살면서 그런 말을 처음 듣는다며 말했다. “무덤덤하다뇨? 제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인천에서 보낸 11개월의 시간은 그 말과 함께 막을 내렸다.
발매한 노래 대부분이 히트곡인 가수가 과연 슬픔을 알까? 내게 트와이스의 이미지는 ‘스폰지밥’이었다. 고백을 주저하는 너를 응원하고, 네가 내 맘을 두드려주길 바라고, 내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눌러달라 신호를 보내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만, 내 질문엔 무조건 ‘YES’라 답하기를 원하는. 그래서 근심은 가볍고, 인생은 즐거운 ‘비키니 시티’의 명랑한 해면. 제목이 ‘TT’인 노래를 두고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가짜라며 분개했던 나는, 2019년 발매된 미니 7집 앨범 타이틀곡 <FANCY>를 들은 후 그들에게 내렸던 모든 평가를 철회했다.
나는 <FANCY>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노래가 훌륭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이 곡을 기점으로 트와이스의 디스코그래피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딱히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 곡의 메시지가 이전의 것들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다 무슨 소용인가. 애초에 내게 <FANCY>는 노래가 아니다. 나에게 <FANCY>는… 눈물이다.
<FANCY>로 트와이스가 꾀한 것은 ‘성숙’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전에 입던 ‘소녀 같은 옷’을 벗으며 잘 표현되었지만, 여전히 사랑에 빠진 상태로 부르는 노랫말은 그들을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언젠가 하늘빛이 아주 오묘했던 저녁. 나는 <FANCY>를 듣다가 통곡했다. 트로피컬 색 하늘에 많은 것을 묻어두는 듯한 나연의 첫 소절만으로 ‘성숙’이라는 컨셉은 초과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뾰족한 것에 매일 찔리고 베이는 듯한 미나의 위태로운 불안과 따끔한 가시 같은 것은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는 정연의 씩씩한 위로가 합을 맞추고, 모모, 사나, 쯔위로 이어지는 ‘웃으며 흘리는 눈물’ 구간은 단순한 가사 덕분에 더욱 슬픔이 깊어진다. 나연과 지효가 머리에 힘을 가득 주고 눈물을 참듯이 부르는 후렴 부분은 이게 맞는 것인지 몰라서 SOS를 치는 채영과, 꿈처럼 행복해서 상태 메시지를 ‘랄랄라’로 바꾸는 다현의 ‘너무 슬퍼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은 파트’와 만나며 그 슬픔이 배로 차오른다.
쥐어짜며 풀어썼지만 사실 <FANCY>가 주는 슬픔은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노래의 슬픔은 결코 기쁨으로 승화되지 못한, 커다란 슬픔들 사이에 물때처럼 묵은 일상의 슬픔이며 또한 계속 삶을 사랑할 거라고 외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처절하게 짓는 미소이기 때문이다. 매일 슬픔을 마주하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음을 깨닫고, 더 나아가 그 처절함 자체를 용기로 삼는 목소리. 그래서 엉엉 우는 것만으로도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노래, 아니 눈물. 노을이 지는 늦은 오후에 경인고속도로를 지날 일이 있다면 혹은 인천으로 가는 1호선 지하철을 탈 일이 있다면, 한 번쯤 트와이스의 <FANCY>를 들어보라. 원망을 삼킨 채 너절한 힘으로 굴러가는 매캐한 도시가 우리의 삶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그것은 또한 얼마나 훌륭한 장면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