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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옛날 청춘영화 같은 룩을 구현하고자 했다, 엔하이픈 정규 2집 컨셉 시네마 <로맨스: 언톨드>(ROMANCE : UNTOLD) 연출한 이충현 감독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24-07-04

하이브 산하 빌리프랩 소속의 보이그룹 엔하이픈은 뱀파이어 세계관을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그룹이다. 특히 광고업계 출신 유광굉 감독이 연출한 컨셉 트레일러 <다크 블러드>(DARK BLOOD), <오렌지 블러드>(ORANGE BLOOD) 연작은 K팝 산업에서 새로운 비주얼을 시도한 역작으로 손꼽히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정규 2집 《ROMANCE : UNTOLD》 발매를 앞두고 선보인 컨셉 시네마는 보다 영화적인 내러티브와 룩을 지향하며 이충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광고업계에서의 경력을 시작으로 삼성전자와 협업한 단편영화 <하트어택>을 연출하는 등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펼쳐온 이충현 감독에게도 아이돌그룹과의 컬래버레이션은 처음이다.

- 엔하이픈은 정해진 세계관이 확고한 그룹이다. 연출 제안을 받은 후 기존의 콘텐츠를 학습해나가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 유광굉 감독이 연출한 엔하이픈의 컨셉 트레일러를 알고 있었다.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뱀파이어 판타지 누아르 장르를 연출해보고 싶은 마음이 원래 있었고 마침 스케줄도 맞아서 함께하게 됐다. 빌리프랩에서는 기존 세계관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도 된다고 했지만 팬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지 않나. 나도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팀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그들의 세계관을 공부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 시리즈로 각색하는 과정과 비슷해서 낯설지는 않았다. 영화 <>이나 지금 작업 중인 <연옥의 수리공>도 원작이 있으니까.

- 시나리오와 연출에 대해 긴밀하게 협업하는 쪽이었나, 자율권을 보장받는 쪽이었나.

=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자율적이었다. 그쪽에서 먼저 컨셉을 제시한 게 아니라 내가 제안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엔하이픈 소속사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멤버들의 캐릭터도 파악해야 하지 않나.

= 엔하이픈이 데뷔 전 출연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일랜드>를 봤다. 유튜브에 올라온 자체 콘텐츠의 양도 방대하더라. 멤버들을 알아가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나도 엔하이픈의 팬이 됐다. (웃음)

- 엔하이픈의 뱀파이어 세계관은 음악은 물론 뮤직비디오, 콘서트, 롯데월드 같은 어트랙션으로도 확장된다. 이들과 컨셉 시네마는 컨셉 트레일러와 어떻게 구분되나.

= 엔하이픈이 기존에 선보였던 뱀파이어 세계관은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 강했다. 아이돌그룹이다 보니 본격적으로 총을 쏘는 다크 누아르는 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컨셉 시네마는 기존 아이돌 느낌을 덜어내고 옛날 청춘영화 같은 룩을 보여주고 싶었다. 의상의 경우 하이브쪽 스타일리스트에게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트레인스포팅>을 레퍼런스로 말씀드렸고 그에 맞춰 옷을 준비해주셨다. 앨범 컨셉을 미리 선보이는 컨셉 트레일러는 서사가 뚜렷하지는 않다. 이번 컨셉 시네마는 멤버마다 대사도 있고 내러티브도 좀더 뚜렷하다. 사실 처음에는 컨셉 트레일러로 시작했는데 작업 과정이 훨씬 영화적이다 보니 명칭을 바꾸게 된 것이다.

- K팝 그룹의 정규 앨범을 소개하는 컨셉 시네마라는 특성상 지켜야 할 작법이 있지 않나. 명확한 주인공이 있는 단편영화와 달리 특정 멤버의 팬이 서운해하지 않도록(웃음) 멤버 모두에게 대사를 주고 각자 돋보이는 ‘원숏’을 잡아주는 법칙도 발동해야 한다.

= 카세트테이프에 써 있는 ‘XO’는 타이틀곡의 부제, 나오는 음악은 실제 곡을 변주한 것이다. 미술 등 다양한 요소에 앨범과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만들어뒀다.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는 서사와 관계없는 몇 가지 미션이 있긴 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찍을 때는 영화 촬영장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발레리나>를 함께한 스태프들과 함께 3회차 정도 찍었다. 오히려 K팝쪽에서 영화작업을 처음 겪으며 신기해하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듣기로 K팝 업계에서 세계관 스토리텔링을 위해 새로운 영상 작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더라. 오히려 그들이 영화계보다 적극적으로 창작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도 비슷한 컬래버레이션이 더 등장하지 않을까.

- 목을 물어뜯는 액션 중심으로 갈 수도 있고 <다크 블러드>처럼 칼을 쓸 수도 있었다. 총격 액션을 택한 이유는.

= 뱀파이어 장르에서 몸을 쓰는 액션은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나. 총 쏘는 뱀파이어 액션을 새롭게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다른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이번 작업을 통해 먼저 시도해봤다. 빌리프랩에서도 ‘감독님이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하기도 했고.

- <다크 블러드> <오렌지 블러드>와 달리 이번 컨셉 시네마에서는 일곱 소년을 유일하게 지켜준 존재 ‘클로에’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로맨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다.

= 나는 ‘팬’의 느낌으로 좀더 접근하기는 했다. 엔하이픈의 팬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 되도록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클로에와 함께한 신은 8mm 카메라로 찍었다. 원래 초고에는 없었는데 엔딩이 힘을 받도록 액션 신과 대비되는 신을 추가로 넣은 것이다.

- 감독으로서 본 엔하이픈 멤버들이 배우로서 가진 강점과 가능성은 무엇이었나. 한명씩 꼽아달라.

= 아무래도 연기를 한 적이 없던 터라 현장에서 어색해하긴 했다. 하지만 노래와 안무에 감정을 담는 데 능숙한 분들이라 조금만 잡아주면 바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알기로 몇몇 멤버는 나중에 연기도 하고 싶어 한다더라. 니키님은 일본인이라 발음이 어려울 수 있는데도 내레이션에 감정을 잘 싣는다. 감정이 정말 좋았다. 몸을 잘 써서 액션 연기도 소화를 잘했다. 정원님은 언제나 안정감이 있고 고루고루 잘하는 ‘육각형’ 멤버다. 특히 눈물 연기를 짧은 시간에 해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훈님은 외모 자체가 진짜 뱀파이어처럼 생기지 않았나. (웃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계속 보게 되는, 이야기가 되는 마스크를 갖고 있다. 대사가 가장 많았던 희승님은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한다. 앞으로 훈련을 좀더 받으면 배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우님은 감정이 가장 많은 멤버 같다. 소년 같고, 뭔가 촉촉하고 섬세하고 유니크한 사람이다. 제이크님은 무척 잘생겼는데 개구쟁이처럼 해맑은 느낌도 갖고 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았다면 그쪽으로 캐릭터를 더 살려서 시나리오를 썼을 것이다. 제이님은 총이 무척 잘 어울린다. 아이돌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남자의 섹시함을 갖고 있다. 외모적으로 이번 컨셉 시네마에 가장 잘 어울렸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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