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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OK] ‘불이 켜진 창문’
이다혜 2024-06-10
피터 데이비드슨 지음 / 정지현 옮김 / 아트북스 펴냄

불이 켜진 창문은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참혹한 사건의 전조를 의미하고,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에서는 소녀가 갖지 못한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뜻한다. 문화사학자 피터 데이비드슨은 시와 소설, 그림에서 불이 켜진 창문들을 찾아내 읽어내는 작업을 하고 <불이 켜진 창문>을 썼다. 이 책에 나열된 불 켜진 창문들의 풍경과 사연은 시대와 장소, 정서를 함축하는데, 피터 데이비드슨의 문장은 그 고요한 밤의 창문들 앞을 서성이는 느낌을 선사한다. 세기말의 여름 저녁 풍경을 보여주는 앙리 르 시다네르의 <달콤한 밤>은 1897년 작품으로 시다네르는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찬사한 작가다. “발아래 땅은 그림으로 곧장 비치는 달빛에 흠뻑 젖었다. 나무 그림자는 스케치로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따뜻함과 고요함이 잠깐 멈춘 느낌이 강하다.” 걷는 여자들 뒤쪽의 흰 벽에는 너무도 밝은 달빛 속에서 살구색으로 빛나는 창문이….

<불이 켜진 창문>은 ‘도시의 겨울’, ‘런던 야상곡’ , ‘시골 풍경 속 창문’, ‘여름밤 불빛’ 등 총5개 장으로 구성해 각 장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보다는 서로 뒤섞인 느낌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어 ‘여름밤 풍경 속 따뜻한 불이 켜진 창문’이라는 테마가 여러 챕터에 걸처 반복해 등장하는 식이다. 겨울밤 불 켜진 창문의 그림은 겨울이 긴 북쪽 도시 풍경에서 힘을 발휘한다. 고요하고 장엄한 겨울 도시를 걷는 몽환적인 산책 사이로 발견하는 창문의 모습들. 이쯤에서 유령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셜록 홈스 이야기 속 불 켜진 창문의 상징성(사건의 시작 혹은 진실에의 접근)과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산책 풍경의 일부가 된 노란빛 창문들( “낮게 뜬 별들처럼 한결같이 밝게 빛나는”)을 발견하는 사이로 저자 자신의 사적인 추억들이 창문의 모양을 하고 다가온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외롭게 빛나는 노란 불빛들이 시를, 소설을, 그림을 어떻게 완성시키는지 이 책은 수많은 장면들을 통해 입증해 보인다. 풍부한 묘사 덕분에 그림책처럼 느끼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