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 <검은 얼굴의 여우> <하얀 마물의 탑>에서 이어지는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전후 일본 사회를 충실히 담아내는 역사물로서의 매력과 초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건의 연쇄, 그리고 이성으로 차근차근 짚어가는 사건풀이가 두루 재미를 준다. 시간순으로는 <검은 얼굴의 여우> 이후의 사건이며, <붉은 옷의 어둠> 이후에 <하얀 마물의 탑>의 시간으로 진입한다.
시리즈에서 명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은 모토로이 하야타. 탄광에서 검은 얼굴의 여우로 불리는 괴기와 밀실 살인을 해결한 그는 만주 건국대학에서 만난 동창 구마가이 신이치에게서l 연락을 받는다. 도쿄에 와서 이상한 사건을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요청이다. ‘붉은 미로’라 불리는 비좁은 미로 같은 암시장에서 여성들을 뒤쫓는 ‘붉은 옷’이라 정체불명의 괴인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토로이 하야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뒤섞여 차별 속에 살아가는, 온갖 불법적인 일이 자행되는 와중에도 내부 규율이 지켜지는 ‘붉은 미로’로 향한다.
‘붉은 미로’에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구축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후 일본 대도시의 암시장을 구성하는 인간 군상을 대표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압축적으로 <붉은 옷의 어둠> 속 이야기에 장기말처럼 놓인다. 미로 같은 골목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진실을 향해 미스터리와 혼합된 공포가 점점 고조되어간다. 소설 속 가장 중요한 사건은 중반이 넘어서 벌어지고, 그 사건 이후에는 또 다른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믿을 수 없는 용의자까지 범행 현장에 남겨진 밀실 사건. 진상은 밝혀질 것인가.
시리즈의 전작인 두 소설과 비교했을 때, <붉은 옷의 어둠>에서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빌드업이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이 소설의 개성인데, ‘붉은 미로’는 사실 일본 근현대사의 축소판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징병과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뒤 버림받은 제삼국인(조선인과 중국인)이 뒤얽히고,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던 젊은 여성들이 미군을 상대하는 창부가 되어 죽거나 병에 걸리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부랑아로 간주되어 시설에 갇히거나 굶어죽는 등 시대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생생하게 조형된 각 캐릭터가 소설 이후에 어떻게 살아남을지까지 생각이 미치는 것도 그래서다.
227쪽“홧술이나 마시지 않으면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신이치의 이 걱정은 적중하고 말았다. 게다가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참사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