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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평범한듯 신비로운, 폴 메스컬
이유채 2024-05-10

브렌던 프레이저, 빌 나이, 콜린 패럴, 오스틴 버틀러가 이름을 올렸던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 중에는 1996년생 아일랜드 배우 폴 메스컬도 있었다. 유일한 20대였고 경력은 가장 짧았지만 샬럿 웰스 감독의 <애프터썬>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And the Oscar Goes to…’의 무게를 선배들과 함께 견디기에 충분했다. <애프터썬>에서 메스컬은 11살 딸 소피(프랭키 코리오)와 튀르키예로 여름휴가를 떠난 31살의 젊은 아버지 캘럼 역을 맡았다. 겉으론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내면에선 끊임없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인물의 불안감을 절묘하게 살려냈다. 어른이 된 딸이 더는 만날 수 없는 아버지와의 한때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더욱 슬프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다부진 체격이나 서글픈 눈과 삐뚠 입매가 형성한 그늘진 인상 때문에 어쩐지 늘 의기소침해 보이는 폴 메스컬은 위태로운 보호자를 주로 연기해왔다. 아일랜드 소도시에서 만난 10대 남녀의 멜로드라마 <노멀 피플>의 고등학생 코널은 냉담한 가정환경에 있는 여자 친구 메리앤(데이지 에드거 존스)의 결핍을 성심껏 채워주려 하나 늘 자기 공허함에 허덕이고, 최근작인 영국 퀴어영화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의 이웃 해리는 유년기의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작가 애덤(앤드루 스콧)을 지근거리에서 챙기지만 정작 외로운 자신을 돌보는 데는 서툴다. 다정한 아빠지만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인 <애프터썬>의 캘럼 역시 코널과 해리의 분신 같은 친구다. 차분하고 사려 깊은 이들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를 지키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 존재들에게 불안전한 느낌을 주고 만다. 기질적으로 타고나고 성장 배경이 길러낸 민감함과 우울감을 은은히 표출하는 역할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동시대의 젊은 남자배우는 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폴 메스컬은 흔한 남성 청춘 스타와 달리 불화한 세상과 싸울 생각은 애초에 품지 않고 내적 고통을 파고듦으로써 관객에게 자기 존재를 각인하는 통각의 배우다. <노멀 피플>의 공동 연출자인 레니 에이브러햄슨은 그의 매력을 “강인함과 섬세함이 아름답게 섞인, 보기 드문 남성성”에서 찾은 바 있다. 언급한 세 작품에는 보호받는 대상이 메스컬이 분한 인물의 등을 응시하는 장면이 모두 있다. 자기 속을 절대 꺼내 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웅크린 코널, 캘럼, 해리의 등에다 대고 메리앤, 소피, 애덤은 조용히 기도한다. 언젠가 나를 두고 훌떡 떠나버리는 잔인한 짓만큼은 하지 말아 달라고.

폴 메스컬이 가진 예민한 성정의 근원을 찾기 위해선 그가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메이누스에서 살던 16살 때로 돌아가야 한다. 종종 연극무대에 오르던 교사 아버지와 경찰관 어머니 그리고 두명의 동생과 함께 살던 그 시절의 메스컬은 편부모가정에서 자라 학비를 걱정하던 코널처럼 “가족의 재정 문제를 걱정하고 부모가 느끼는 불안감으로 항시 스트레스 상태”였다. (메스컬에게 어린 시절에 대해 들려달라고 물었던 한 인터뷰이는 얼굴을 붉힌 채 “인생의 최저점, 불안”과 같은 말을 골라 쓰며 허공에 손을 젓던 그를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메스컬의 꿈은 스포츠 스타였다. 액션영화의 영웅에 잠깐씩 빠지긴 했지만 유망한 게일릭 풋볼(아일랜드식 축구) 선수로서 그가 닮고 싶은 인물들은 보통 축구계 인사였다. (경기 중에 코가 부러진 적이 있는데 수술 뒤에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살짝 휜 코는 고집스러운 인상을 만들었다.) “연기가 스포츠만큼이나 아드레날린이 발생하는 행위”라는 걸 깨달은 건 학교 뮤지컬에 참여하면서다. 뮤지컬이 필수과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을 봤고 주인공으로 합격했다. 대규모 출연진과 15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극을 올리면서 “스포츠를 하면서 즐겼던 동료애”를 느꼈다. “모든 경기가 승리로 끝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무대는 매번 챔피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된 부상으로 제2의 길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는 배우를 택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드라마 스쿨(리르 아카데미)을 우등 졸업했고 <노멀 피플>로 첫 시리즈 데뷔를 치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던 2020년 4월에 공개된 <노멀 피플>은 그해 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시리즈가 되었고 그에게 제6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TV부문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겼다. 이름을 알린 몇년 만에 그는 유명 감독들의 눈에 들었고 차기작이 쌓였다. 주연으로 참여한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2>가 올해 말 북미 개봉예정이고,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무려 20년에 걸쳐 찍을 계획인 <메릴리 위 롤 어롱> 촬영에 들어갔으며 같은 아일랜드 배우인 제시 버클리와 셰익스피어의 아내 아그네스의 이야기를 다룬 클로이 자오의 신작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인생이 시끌시끌한 쪽으로 옮겨왔으니 SNS로 대중적 인기를 끌어모을 법도 하지만 여전히 샐쭉한 청년은 13만 팔로워가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돌려놓고 거들떠보지 않는다. “10년 뒤 소셜미디어를 버린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겠나. 이게 나인걸.”

“연기는 탐정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재밌다. 사람의 심리에 깊게 파고들어 가장 무겁고 어두운 부분 근처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애프터썬> 영국 개봉을 앞두고 <가디언>과 가진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폴 메스컬이 어떤 식으로 캐릭터에 접근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맡은 인물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세세히 분리하고 겪고 있는 갈등을 찾아내 이야기의 핵심과 연결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애프터썬>을 촬영할 때도 그랬다. 캘럼의 부성애, 수치심, 자기혐오 등을 어떻게 표현할지 영화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상실감”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샬럿 웰스 감독에서 충분히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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