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시각으로부터 시작된 자극이 오감으로 퍼져가는 시간이 소중했다. 워낙 소심했던 터라, 언변이 좋지도 않았을뿐더러,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말’이라는 것을 무서워했다. 쉽게 퍼져나가는 음성 속에 숨겨져 있는 날카로운 무게들이 나에겐 예민하게 다가왔다. 글쓰기는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생각과 느낌들을 물방울 튀기듯 툭 덜어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투박하게 늘어놓은 단어들은 문장이 되었고, 이어진 문장들은 나의 자취로 남아 있었다. 그게 참 좋았다. 어떠한 대상을 관찰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종이에 적어내는 것이 어느샌가 작은 습관이 되어 있었다. 종종, 내가 글을 즐겨 쓰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글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거니와, 일기 수준인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퍽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한번 용기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한 상태로 보류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 <씨네21>에서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시작을 할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주었다. 예전에는 ‘주제’도 ‘독자’도 ‘틀’도 정해져 있지 않아 주저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단순했다. 같이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이들이 있어서 고민의 순간은 찰나였다. 꽁꽁 숨겨둔다고 해서 더 값지게 빛나는 것이 아닐 텐데.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어렸을 적 시작된 작고 소소한 습관을 나눠보면 어떨까. 나에겐 더더욱 값진 순간이 아닐까. 영화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이러한 결심으로 앞으로 1년간 나의 관찰 일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거창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미세해서 눈살을 찌푸리고 가늘게 눈을 떠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 동물, 사물을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한 인물을 구축하는 나만의 과정, 끝이 나지 않는 탐구.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만 간직하다가 공개를 하려니 어색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어색한 시작이 무한 동력이 되어, 좋은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특정 대상을 바라보고 느낀 점, 그의 행동이 될 수도, 함께 나눈 대화를 통해 느낀 점이 될 수도 있겠다. 같은 상황 안에서 여러 다른 리액션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의 관찰과 성찰 또한 적어내려가고 싶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부분들을 배역에 녹여냈는지도, (부끄럽지만) 소개할 예정이다. 그렇기에, 지극히 사적인 대화와 경험들이 많이 포함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본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한다.
소망이 있었다. 자주 웅얼대고, 혼잣말을 많이 하고, 작은 목소리를 가졌던 내가, 용기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현시점에서 아주 큰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나의 목소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나의 소망이 어쩌면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함께 유유히 흘러가고 싶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가끔씩 유난스럽게도 보내면서, 속절없이 부는 바람도 실컷 마주하면서. 그렇게 묵묵히 바라보면서 소소한 1년을 잘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