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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 환갑 모임을 가다
2002-06-14

소설의 환갑

공개 단체 일을 맡아보느라 숱한 환갑 잔치들을 다니거나 치러보았는데 제일 재미없는 것은 정치인, 빈약한 것은 물론 시인, 흥미로운 것은 소설가 환갑이다.

소설은 매우 다양하다 못해 모종의 강력한 잡식성을 요구하는 장르고 그 자체가 생애적이므로 ‘환갑’이라는 말에도 맞고 ‘잔치’라는 말에도 맞는다. 게다가 소설가 60살이면 우리나라 전 분야와 인맥을 맺고 있는 셈이니 참석 인사가 정말 다채로운데, 그 다채로움이 소설적 총체성으로 종합되는 잔치 분위기는 언뜻언뜻 소설 작품 자체를 넘어서기도 한다.

5월24일 금요일이고요, 장소는 인사동 ‘지리산’. 근데, 회비가 5만원입니다…. 한 성질하지만 글이 색시처럼 예쁘고 실무처리는 그야말로 귀신 같은 문학평론가 하응백이 그렇게 연락을 해왔을 때 “야. 회비는 돈 잘 버는 네가 대신 내면 안 되냐” 뭐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했지만 정말 놀란 것은 장소였다. 거긴 큰 방이 없고, 아니, 닫힌 장소 자체가 없는 덴데….

시간보다 조금 늦게 지리산엘 도착했더니 한 20명 남짓한 사람이 와 있고 의외로 예상했던 술팀들이, 전혀 아니다! 무엇보다, 정호웅(문학평론가)이 없다. 오늘은 소설가들만 모이는 자립니다… 뭐시라? 그럼 내가 소설가냐?… 소설 썼잖아요, 형도…. 그랬나? 내가 소설가였나?…

그러고 어영부영 앉는데 정말 좌중은 젊은 소설계를 집약해놓은 듯했다. 묵중한 김원우는 물론 친동생이니 참석했고 종교성으로 문학을 심화한 정찬, 까장한 민중아줌마 윤영수, 에로티시즘으로 문학의 결로 전화한 마르시아스 심, 스토리의 지문을 파고드는 하성란, 현실주의의 역동으로 죽음의 영역까지 파고든 김인숙, 그리고 난해의 수를 놓은 조경란, 그리고 초면인 이인화와 오수연, 오랜만에 만난 친구 정영희까지 김원일 주변에 정말 미래 전망처럼 둘러앉았다.

이인화는 깍듯하고 오수연은 소탈-진지했다. 아하, 성석제만 있으면 얘기가 옆으로 뻗는 재미도 있겠구만. 이승우가 있으면 뭔가 육화될 것 같기도…. 나는 무슨 소설 등장인물이 된 착각을 기분좋게 느끼며 회비 5만원은 물론 3차 노래방에서 카드까지 긁었는데 그날 카드를 분실, 신고하느라 확인해보니 물경 28만원. 마누라한테도 들켰다. 으악!

하지만 그날 나는 소설가의 환갑이 아니라 최초로, 소설의 환갑을 보았다.김정환 시인 ·소설가 maydapo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