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불안은 팔기 쉬워도 라면은 팔기 어렵다. 손님의 대다수를 돌려보내는 마트, “무엇이든 팔지만 아무거나 팔지 않는” 킹 프라이스 마트는 어딘가 범상치 않다. 이 기묘한 장소의 주인인 배치 크라우드는 “최고의 장사꾼 혹은 최악의 사기꾼”이라 불린다.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한때 ‘배치의 천원 숍’ 점포를 전세계 2만여개까지 확장 개업했으나 돌연 모든 것을 처분하고 모습을 숨긴다. 그로부터 몇년 후 서울에 ‘킹 프라이스 마트’를 새롭게 개장하면서 다시금 이목을 끈다. 이곳의 유일한 직원은 소설의 화자이자 27살 청년인 구천구다. 유명 무당 억조창생 여사의 셋째 아들로, 킹 프라이스 마트에 일하게 된 것도 어머니의 제안에 의해서였다. 억조창생 여사는 출근길에 오른 천구에게 마트에서 ‘베드로의 어구’를 구해올 것을 부탁한다. 어떤 선거도 53%의 승률로 승리하게 해주는 베드로의 어구로 대통령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천구의 눈앞에 배치 크라우드의 비밀 금고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29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자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당선한 김홍 작가의 신작이다. 첫장부터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정보값이 쏟아져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낯섦을 조금만 견뎌내면, 곧 독특한 리듬감에 매료될 것이다. 복수와 같은 비가시적인 경험도 판매 가능하다는 마트의 기조를 바탕으로 소설은 상업자본주의의 실태를 격하게 풍자한다. 또한 대가 없이 대통령이 되려는 억조창생 여사, 7분 김치찌개 레시피로 민심을 얻으려는 상대편 후보 백종원 등을 위시해 민주주의의 이면까지 짚는다. 중요한 것은 구천구의 변화다. 그는 한번도 동네와 가족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첫 직장에조차 어머니에 의해 끌려가듯 입사했다. 무력해 보이던 그가 자신의 족쇄를 말 그대로 전부 집어삼켜 백지 상태에 이른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하는 클라이맥스는 전과 달리 서늘하고, 그래서 충격적이다. 요란한 유머들을 끌어와 현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주인공의 자아 찾기까지 실현해내고야 마는 작가의 뚝심이 미덥다.
91쪽“(…) 언젠가 너 역시 나를 위해 싸워주기를 바라. 그래야 <킹 프라이스 마트>는 세계 일류로 도약할 수 있다. 라면? 원한도 대상도 없는… 복수? 그럭저럭 견딜 만한… 불행? 너와 내가 함께라면 얼마든지 당일 배송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