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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가고, 사랑은 남아‥, <8월의 크리스마스>
2002-06-12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내 인생의 영화’의 씨네 박입니다. 이번 주는 특별히 어느 한적한 마을의 김모 사진사를 모시고 이 코너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씨네 박: 안녕하세요?

김모 사진사(이하 김모): 아…. 예 반갑습니다..

씨네 박: <씨네21>에 대해선 많이 알고 계신가요?

김모: 그럼요. 제가 즐겨 보는 잡지 중 하나죠. 특히 씨네 박씨가 직접 출연하시는 코너는 아주 잘 보고 있습니다.

씨네 박: 고맙습니다. (웃음)

김모: 근데 이번 주에는 왜 한적한 시골에서 사진사나 하고 있는 저에게 ‘내 인생의 영화’ 코너를 의뢰했는지 매우 궁금하네요.

씨네 박: 아… 예…(호흡) 이번 주에는 특별히 칸영화제의 한국영화 쾌거와 한일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열기 속에 소외돼 가는 일반 서민들을 위해 제가 특별히 준비한 특집입니다.

김모: 그렇군요 기자님.

씨네 박: 기자님? 아닙니다… 씨네 박이라고 하죠. 조모 일간지 광수가 있다면 저희 <씨네21>엔 씨네 박이 있죠.

김모: 아, 예.

씨네 박: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영화는 자주 보시나요?

김모: 예전에 많이 봤는데… 요즘엔 먹고살기도 바쁘고 이 영화나 봐야지 하고 극장에 가보면 한주만 늦어도 극장에서 상영을 안 하고… 그래도 한달에 한편씩은 보는 편이죠. 씨네 박씨는 자주 보시나요?

씨네 박: 저야 원래 리메이크 영화 전문 제작사 겸 감독 겸 때론 배우라 거의 다 보는 편이죠.

김모: 그렇군요.

씨네 박: 김모 사진사님, 본인이 생각하시는 내 인생의 영화는 어떤 것이?

김모: 내 인생의 영화라… 있죠. 제 일생을 변화시킨 영화.

추운 겨울날 전 사랑하던 그녀와 함께 극장을 찾았죠. 거기서 를 보았습니다. 지금 그녀는 떠나고… 전 사진사가 되었죠.

씨네 박: 슬픈 이야기군요. 그녀가 그리운가요?

김모: 아니요.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었을 텐데요. 그저 가끔씩… 를 볼 뿐이죠….

있을 수 없는 특집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가게 되면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가 문뜩 떠오른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 또는 소개팅 나간 자리에서 “당신은 어떤 영화가 제일 좋았어요?”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주저않고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대답한다.

졸업을 앞둔 겨울,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녀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 극장에 가게 되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주인공이 눈을 피하기 위해 옷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는 인상적인 포스터. 우린 그 포스터의 영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슬픈 영화는 아니었다. 아니, 그 슬픔의 실체는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나에게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다만 영화는 잊었던 작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정원이 창문 너머 다림을 쳐다보듯 아릿한 슬픔 너머 사랑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내게 그런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영화 속 산울림의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란 노래가 기억난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사랑도 죽음도 한장의 사진으로만 남았다. 죽음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일 뿐.

가슴속 깊이 잠재된 슬픔. 숙명적으로 다가온 죽음을 혼자서 편안하게 기다린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보내지 않는 편지에서 정원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고맙다고 썼다.

나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요즘도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이 느껴질 때마다 그리고 그녀가 떠오를 때마다 를 찾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일상의 소소함에서 발견한 행복과도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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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원국/ 영화사 ‘감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