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제가 겁없이 월드컵과 ‘맞장’ 떠서 보기 좋게 성공했다. 월드컵 개막 전야제가 열린 지난 5월30일 저녁, 같은 시각 서울아트시네마(옛 아트선재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제6회 인권영화제 개막식은 그런 대로 성황이었다. 개막식 프로그램은 인권영화제 특유의 순박하고 어설픈(어떤 이들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재미가 있었고, 노래패 꽃다지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치는 관객의 어울림으로 이어졌다. 월드컵 개막 이후 첫 주말과 벌집 들쑤셔놓은 듯 온 나라가 야단법석을 떨었던 한국 대 폴란드 경기가 열렸던 시간에도 영화제는 계속됐다(한국 대 폴란드 경기가 열린 시간에도 ‘63명이나’ 영화를 봤다).
그리고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과 관련해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미국 대 포르투갈의 경기가 벌어진 시각에 폐막식이 열렸다. 폐막식 분위기는 개막식과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인상적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관객이 무대에 올라가 영화 본 소감과 영화제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순서였다. 영화제에 개근했다는 한 남자 고등학생, 17편을 봤다는 시민단체의 활동가, 일 때문에 왔다가 영화를 15편이나 보고 인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젊은이 등 관객이 폐막식의 주요 게스트로 ‘대접’받는 것을 보고 인권영화제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제 동안 관객 수는 연인원 총 5600여명. 월드컵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뤄볼 때 아무래도 관객 수가 예년보다 좀 줄지 않겠냐던 예상과 달리 오히려 늘어난 수치다.
사실 인권영화제는 월드컵에 맞장을 뜨고 싶어서 뜬 게 아니다. 그때가 아니면 상영관을 구하기 어려워 ‘본의 아니게’ 맞장을 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에서 제법 번듯하게 개폐막식 스케치를 했지만, 인권영화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상황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각종 지원에 힘입어 영화제를 꾸려가지만 유독 영화쪽에서는 인권영화제가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제 동안에 몇몇 다큐멘터리 감독을 제외하면, 그 흔한 영화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개폐막식 사회자도 ‘영화쪽’에서 구하지 못해, 결국 ‘인권쪽’ 인사들이 전담할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상영장 구하느라 애먹는 것은 숙명이라고 치더라도, 이미 한국에 수입된 외국 작품을 섭외하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다. 물론 개봉중인 작품이어서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지만, 인권영화제 상영작이라는 딱지가 이후 흥행에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는 선입견 때문에 작품 내주길 꺼린다는 것이다. 제발 인권영화제가 불쌍하니 도와달라는 말로 읽지 말기 바란다.
나는 ‘인권영화제 자문위원’ 이름으로 <씨네21>에도 섭섭함이 크다. <씨네21>은 이번 인권영화제 관련 기사를 2페이지짜리 아주 관습적인 소개기사를 딱 한번 실었다. 편집진의 공식 견해는 아니지만, 뭐 그리 화제작도 없는데다가 대부분 필름 상영이 아니고, 이런저런 자잘한 영화제도 많은데 카르텔도 필요하고… 뭐 그런 이유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게다가 칸영화제 소식 같은 버리기 아까운 기사는 넘치고, 광고페이지를 줄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페이지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영화제를 영화제로 상대 비교하지 않고, 영화를 매개로 한 인권운동 캠페인으로 봤다면 달랐을 것이다. <씨네21>은 그래야 하는 ‘노블리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남 원망하며 투덜거리지 말고 그까짓 영화제 안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힐난한다면… 쩝, … 할말 없다. 이민이라도 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