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가 공간 연구의 대표 격 철학자라고 할 순 없다. 공간을 연구한 사상가로는 자본주의를 아케이드로 읽어냈던 발터 베냐민이나 공간을 개념적으로 나누었던 앙리 르페브르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판옵티콘의 관계를 지적했던 푸코의 저작물은 물론이고, 건축과 지리, 도시의 건축물(특히 병원과 감옥)에 대해서는 푸코가 새로운 논의를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다. 2024년 한국의 사회, 경제의 여러 논의들은 사실상 공간의 점유가 쟁점이다. 공간이 자본이 되고, 자본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푸코가 공간에 대해 사유한 8편의 텍스트(강연, 대담을 비롯)를 담은 <권력과 공간>은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를 경유해서 읽었을 때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와닿는다. 푸코의 철학을 잘 모를지라도, 결국 그가 평생 해왔던 연구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왜 ‘당연하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는 권력과 공간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감옥을 방문한 후 나눈 대담에서 푸코는 공간이 특정 집단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각 사회는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배제되는 조건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고요. (중략) 경제 과정에서 그러한 절차가 차지하는 자리는 어디이고, 권력의 행사와 유지에서 그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계급투쟁에서 그것의 역할은 무엇인가?”(95~96쪽) 그가 방문한 것은 감옥이지만 공간으로 사람을 배제하고 계급을 나누는 것은 우리가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것들이다. 대중교통을 타려는 장애인을 배제하고, 신축 아파트에서 높은 담장을 지어 비입주민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특히 2부에서 지리학자들과의 대담에서 푸코가 지리학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필연적이라 여겨왔던 국적에 의문을 품게 한다. 지리학이 지역을 구획화함으로써 개인에게 정체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내 고유의 것이라 여겨왔던 신체, 애국심, 운동, 힘, 민족 정체성과 온갖 갈등은 과연 진짜 내 것일까? <권력과 공간>을 읽는 것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비판적 사고를 하게 한다. 관성적으로, 주어진 것에 순응하며 살고 있었던 이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146쪽노동자 가족은 주거단지에 정착하고, 모종의 도덕성을 처방받게 됩니다. 부엌과 식당 역할을 하는 방, 생식을 위한 장소인 부부의 방, 그리고 아이들의 방으로 이루어진 생활공간을 할당받음으로써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