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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꿈, 희망, 그리고 디즈니라는 레거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창립 100주년 기념작 <위시> 리뷰
김철홍(평론가) 2024-01-04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 2024년 새해 첫주에 국내 극장가를 찾는다. 스튜디오의 62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인 <위시>다. 100년 동안 60편이 넘는 작품을 창조해냈다는 건 단순히 숫자로만 따져도 대단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개별 작품들의 면면을 찬찬히 떠올리다 보면, 그 긴 세월 동안 디즈니가 전세계에 퍼뜨렸을 계산 불가능한 영향력이 느껴져 아득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위시>는 그 영향력,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디즈니의 정신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가히 ‘지적재산권(IP)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다양한 결과물을 선사했던 디즈니지만, 그 모든 세계들이 온 세상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하나다. 꿈꾸는 것을 절대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위시>는 위대한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이 세운 로사스 왕국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매그니피코는 불행한 유년 시절을 겪었던 인물이다.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바꾸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마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며 왕국의 번영을 일궈낸다. 그의 대표적인 선행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소원 성취식’에서 그는 임의의 방식으로 대상자를 선정한 다음,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모습을 만백성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곤 한다. 어떤 마법도 전부 시전이 가능한 그에게 이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심을 보낸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팔 한번 휘저어서 평생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신과 같은 리더에게 그 누구도 불만을 품지 않는다. 저기 무대 위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행운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다음에 열릴 소원 성취식에선 나의 이름이 불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중 처음으로 이러한 세상에 의문을 품은 한 소녀가 있으니, 바로 <위시>의 주인공인 아샤(아리아나 더보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아샤는 현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두개의 이벤트를 앞둔 상태다. 하나는 매그니피코 왕의 직속 마법 견습생이 될 수 있는 최종 면접이고, 두 번째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100번째 생일이다. 12살에 아버지를 잃은 아샤이기에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아샤가 이번 생일에 신경을 쓰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아직까지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이젠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질 차례라는 말을 하지만, 아샤는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한다.

걱정을 멈출 수 없던 아샤는 결국 왕과의 면접 자리에서 섣부르게 사적인 바람을 드러내고야 만다. 왕은 그런 아샤를 나무라기보다는 소원을 들어줄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연설하기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요점은 왕이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을 통해 왕국에 도움이 되는 소문만을 선별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더 심각한 건 소원에 대한 판단이 끝났음에도 이를 주인들에게 영원히 돌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왕에게 소원을 맡긴 사람들은 말 그대로 ‘꿈이 없는 상태’로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아샤는 그런 왕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밤 아샤는 답답한 마음을 반짝이는 별에게 털어놓는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사람들이 다시 자신들의 꿈을 스스로 꿀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소원을 빌어본다. 그러자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별의 형상을 한 요정이 아샤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렇게 아샤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별과 함께 왕이 가둬놓은 사람들의 소원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자한 줄 알았던 권력자가 사실은 악인이었으며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 주인공이 결국 모두를 구해낸다는 서사는, 디즈니뿐 아니라 수많은 창작자들의 입에서 무수히 반복/변주돼왔었다. 하지만 아샤의 이야기에 자꾸만 귀 기울이게 되는 건, 아니 디즈니가 무려 100년 동안 굳건히 ‘디즈니’였던 건, 그 뻔한 서사에 올라타 있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 그리고 그들이 속해 있는 세계가 그 어떤 스토리텔러의 창조물보다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위시>는 그러한 자신의 장단점을 에두르지 않고 한껏 끌어올린 작품이다. 스토리는 클래식으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예스러우나, 창조물들은 오랜 세월 자신의 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었던 것처럼 활기가 넘친다. 지난 세기의 업적을 기리려는 너무나도 상징적인 이 작품에서 디즈니가 이런 선택을 내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무슨 이유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위시>는 분명 향후 디즈니가 선보일 작품들의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작품이 보여준 디즈니의 씩씩한 자기 객관화는 앞으로 이어질 그들의 다음 100년을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위시>는 스튜디오의 역사적 맥락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도 충분한 고유의 매력을 지녔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3D애니메이션에 수채화 느낌이 나는 2D애니메이션을 결합한 그림 스타일이다.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아 보이는 것과 동시에, 과거 디즈니 작품들에 대한 향수까지 채워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래미 어워즈에 여러 차례 후보 지명됐던 아티스트 줄리아 마이클스가 작곡한 사운드트랙 역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하다. 특히 2022년 뮤지컬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통해 94회 미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아리아나 더보즈의 노래는, 극에 등장할 때마다 여지없이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데 성공한다. 본편에 삽입되진 않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룹 아이브의 보컬 안유진이 주제가 <This Wish>를 불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러나 막이 내린 뒤 우리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을 것은, 단연 <위시>에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일 것이다. 일곱 난쟁이를 떠올리게 하는 아샤의 7명의 친구들, 등장하는 매 순간 미소 짓게 하는 염소 발렌티노를 비롯한 다양한 동식물 캐릭터들, 그리고 소원 그 자체를 상징하는 별의 정령까지. 우리의 마음속엔 그렇게 또 하나의 상상력의 씨앗이 심어진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마음속에 자신의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해주세요, 라고 별에게 진심 어린 소원을 빌었던 아샤의 꿈은, 10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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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 D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