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인생의 길잡이라 할 만한 경구가 있다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먼저 떠오른다. 20년째 메모장에 꾸준히 업데이트 중인 명문장 리스트는 교체가 빈번한데 <안나 카레니나>를 접한 이후 제일 첫줄만큼은 바뀐 적 없다. 원어의 정확한 뉘앙스까지 파악할 능력은 안되지만 여러 한국어 번역 중에는 2009년 문학동네 버전을 특히 좋아한다. 문학동네 버전의 ‘고만고만’과 ‘나름나름’이란 표현에선 설사 톨스토이 문체의 원본일지라도 온전히 표현하기 힘든 여백의 매력이 느껴진다. 의미 전달보단 마음의 형상을 그리는 데 집중한 이 짧은 형용사가 한국어의 말맛을 살려 친근하게 거리를 좁힌다.
완벽한 이해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법이다. 손실 없이 온전히 생각을 전달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대체로 오해를 경유하여 소통한다. ‘오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라면 ‘나름나름의 해석’이라고 하자. 한창 까칠하던 시절, 사랑이란 ‘아’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라고 받아들여 만족하는 왜곡된 감정 상태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하도록 강제하는 불가해한 에너지. 발신 과정에 상관없이 처음부터 수신 형태가 정해진 결괏값. (가난한 마음으로 더 바빠진)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거칠게 요약된 몇 단어 안에 과정을 욱여넣는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보며 항상 두루뭉술한 행복과 세세한 불행을 통찰하는 찰떡같은 표현이라 믿어왔다. 행복은 게으른 반면 불행은 수다스럽다. 불행의 결은 훨씬 다채로워 많은 사연과 설명을 필요로 한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이 또한 오해다. 최고의 첫 문장 중 하나로 회자되는 이 명문은 얼핏 불행의 속사정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실제 본편을 읽어보면 정반대로 전개된다. <안나 카레니나> 속 불행한 가정은 비슷비슷하게 묘사되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대략 예측 가능하다. 반면 행복은 짐작조차 힘든 미지의 영역인 양 추상적인 단어 없이 세세한 형태로 ‘그려진다’ .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묘사되는 것. 어쩌면 진실은 추상에서 추상으로, 한마디로 각자 보고 싶은 대로 전달될 운명을 타고난 건지도 모르겠다. 12월 한달 동안 4번의 연속 기획으로 2023년을 되돌아보았다. 흐름을 감지하고 변화를 분석하여 전달하는 것이 전문지의 책무이기에 평소 가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로로 문을 두드려보았다. 2024년에도 미숙할지언정 성실하게 진실의 파편들을 더듬어나가리라 다짐한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의 마지막은 올해 우리를 스쳐 지나간 영화, 시리즈들의 B컷으로 준비했다. 어떤 세밀한 분석과 장황한 설명보다 정확하게 도달할 이미지들. 때로 진실은 카메라 뒤에 머물고, 한장의 사진은 영원이 된다. 2023년 마지막 마감으로 한창 분주한 밤, 황망한 이별을 마주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세상으로 눈을 돌리니 이선균 배우를 둘러싼 많은 말들이 넘쳐나는 중이다. 다시 한번, 불행은 참 수다스럽다. 다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신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과오와 비극은 수많은 말로 뒤덮여 애초에 무엇이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 됐다. 감히 진실을 논할 생각도 없고 깜냥도 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올해 칸에서 나눴던 마지막 인터뷰다. 뭐라고 했는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의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과 한참 말을 고르던 여백이 내내 뇌리에 맴돈다. 돌이켜보니 특별히 인상적인 것 없이 고만고만해서 더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모두에겐 나름나름의 고만고만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부디 새해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아 더 귀한 그 순간들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길. 한장의 사진처럼 영원으로 붙잡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