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주간 소년 점프>에서 첫선을 보인 도가시 요시히로의 베스트셀러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무수한 인기 만화 캐릭터들에 영감을 주었으며, 1992년 방영된 TV애니메이션 또한 전설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175개의 챕터로 구성된 원작 만화, 119개의 에피소드를 자랑한 애니메이션을 단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한 대담한 결정은 그 속에 90년대 초 IP에 대한 진한 향수와 독립적인 완성도를 자랑하는 액션을 밀도 있게 채워넣는 승부수로 이어진다. 도쿄 <유유백서> 팬 이벤트와 시사회에서 확인한, 30년이 넘은 명성의 여전한 매력과 영향력을 소개한다.

2020 도쿄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실내 경기장 아리아케 아레나에 스포츠 경기가 아닌 영화 행사가 열렸다. 시사회에 앞서 장내를 장식한 것은 배우 기타무라 다쿠미와 시손 준, 혼고 가나타 등 출연진이 각 배역의 주력 기술, 상징물 등을 재현한 무대 장치와 함께 차례로 등장해 팬들과 소통하는 팬 이벤트였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보통의 카스미> 등으로 주목받은 기타무라 다쿠미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거대한 농담 같았고, 거의 실현이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프로젝트가 5년의 인고 끝에 성공적인 실사판으로 나타났음을 자부할 수 있다”고 첫마디를 뗐다.

시리즈 첫 에피소드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죽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10대 소년 우라메시 유스케(기타무라 다쿠미)가 영혼의 안내자 보탄(후루카와 고토네)과 만나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트럭에 뛰어들었다가 무참히 튕겨져 나가는 롱숏의 강한 충격파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유스케가 영계로 향해 탐정의 임무를 부여받고 다시 되살아나는 과정, 마계의 요괴가 인간계에 침입해 인간을 조종하면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이 이후부터 거의 휘몰아치듯 쏟아져나온다. TV애니메이션판의 절반인 66화까지의 내용만을 다루는 넷플릭스 <유유백서>는 서사적 설정을 최대한 압축하되 실사화에 있어 팬덤이 가장 우려하는 시각적 완성도, CG와 액션의 밀도에 공을 들였다.

앙숙이자 곧 절친이 되는 유스케와 쿠와바라의 감정선, 그 밖에 유스케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안정적인 멜로드라마적 요소는 쓰키카와 쇼 감독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는 달밤에 빛나고>를 만든 일본 청춘 멜로의 동시대 기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납득된다. 동시에 쓰키카와 쇼는 마계의 벌레에 의해 빙의된 인물들, 그들과의 전투 신을 묘사할 때 끔찍함과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과장된 잔인함이 오히려 실사화의 어색함을 깨고 만화적 세계에 진입하는 손길이 되어주는 모양새다. 시사회 전 질의응답을 가진 감독은 현재 일본 산업에서 이같은 컴퓨터그래픽이 쉽지 않은 시도였음을 밝히며 “5부작을 완성하는 데 거의 5년이 걸렸다”고 답했다. 도구로 형제의 형이 거대한 동생의 어깨 위에 있는 장면 등도 원작에서 충실히 구현됐다. 모두 사전 제작 2년, 촬영 10개월 이상, 사후 제작 2년 이상이 소요됐다.

90년대 애니메이션이 재탄생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아리아케 아레나의 길고 드넓은 통로를 따라 유스케, 쿠라마, 히에이, 쿠와바라, 도구로 형제, 코엔마 등의 의상이 전시됐다. 의상 컨셉의 핵심은 원작의 시간대와 동일한 1989~90년대 초를 재현했다는 사실. 쓰키카와 쇼 감독은 CG로 구현해야 하는 것 외에 실사화의 실현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배우들과 밀착하는 의상이라는 지론과 함께 “원작을 최대한 충실히 고증하려 했다”고 답했다. 의상이 곧 각 캐릭터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장르인 만큼 배우들이 애착을 느끼며 자연스러운 사용감이 묻어나게끔 여분의 옷도 거의 제작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아레나를 채운 5천여명의 인파는 전세계에서 모인 <유유백서> 원작의 팬들, 그리고 일부는 비록 열혈 팬만큼은 아니래도 이처럼 이례적인 대규모 팬 행사를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기자와 글로벌 크리에이터들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전자와 후자 모두 시사가 끝난 뒤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현장 반응을 종합하면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통달한 이들에게도 <유유백서> 시리즈는 꽤나 만족스러운 실사화의 결과물일 뿐 아니라 원작 <유유백서>가 낯선 이들에게도 흥미진진한 오컬트 배틀물로 인식됨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다음날 플랫폼에서 공개된 <유유백서>는 <아리스 인 보더랜드>를 제치며 역대 넷플릭스 일본 시리즈 중 오프닝 성적 1위, 비영어 시리즈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