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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4-1. 맛과 요리 섹션: 부서 이동

예술과 문학 파트에서 맛과 요리 파트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부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계획된 이동이다. 그래도 데스크에 부서 이동 메일을 보내고 나니 덜컥 걱정부터 났다.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맛과 요리에 관해 이야기한다니. 조금 우습다. 그래도 정확히는 맛과 요리를 다루는 잡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할 테니 상관없을지 모른다. 해보지도 않고 전전긍긍하기보다 일단 해야 할 일부터 차근차근 처리하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여러 부서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잡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시간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걱정이 아니라 늦지 않게 출근해야 한다. 새로운 부서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맛과 요리 부서는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정사각형 형태의 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거 말고는 모든 것이 다르다. 우선 개인 사무 공간이 없는 대신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서 모두가 근무하고 있다. 유일하게 분리된 개인 책상은 담당 부서의 편집팀장 자리로 보인다. 한쪽이 파티션으로 분리되어 있고 “Everything busy that’ s happened to us in our life came because of cooks.(우리 삶에 일어난 바쁜 일들은 모두 요리 때문에 생겼다)➊”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파티션 안쪽 공간에는 부엌이 11자로 구성되어 있다. 싱크대 앞쪽으로 조리대가 있고 3구 인덕션과 오븐, 전자레인지와 밥솥, 냉장고까지 있다. 조리대에는 간장과 소금 2종, 맛술, 건표고버섯, 화이트와인, 비니거, 꿀, 올리브오일, 참기름, 고춧가루, 깨, 후추, 말린 허브와 치킨스톡, 굴소스와 각종의 면과 다양한 종류의 과일들이 있다. 어안이 벙벙하다.너가 오늘부터 우리 부서로 출근하는 친구구나.

원형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일어나 나를 맞아준다. 맛과 요리 부서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호리호리한 체형에 일본 영화배우 사카이 마사토를 많이 닮은 말끔한 인상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 부서에 온 것을 환영해. 앞으로 나한테 업무를 배우게 될 거야.

아, 영광입니다.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선배라고 불러.

선배는 맛과 요리 부서의 룰에 대해 알려주었다. 배달 음식 금지. 아무리 바빠도 점심은 함께 만들어 먹을 것. 부서의 식재료는 편집장부터 막내까지 공평하게 1/n으로 나누어 월마다 송금할 것.

원래 당번이 아닌데 오늘은 특별히 내가 점심을 만들어주지. 오늘은 날씨가 쌀쌀하니 뜨끈한 국물 요리를 만들어주겠어. 비건식으로.

선배가 요리하겠다고 하니 아무 말 없이 기사를 쓰던 동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별일 아니라는 듯 선배는 파티션 안쪽으로 내 손을 끌고 들어와 요리용 장갑과 앞치마를 건넨다.

요리도, 기사도 가장 중요한 건 위생이야. 아무리 멋진 요리도 위생이 지켜지지 않으면 빵점이야. 기사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좋은 사진과 글로 채워져 있어도 진실이 아니면 소용없다는 뜻이야.

선배는 큰 냄비와 작은 냄비 두개를 꺼낸다. 큰 냄비를 주며 물을 2리터 정도 끓이라고 시킨 후에 자기는 작은 냄비에 물을 담고 건표고버섯과 꿀, 쯔유를 넣고 끓여놓고는 배추를 씻어 자르기 시작한다. 근데 잡지에 관해 쓰려고 온 것이지, 식당에 일하러 온 것은 아닌데…. 업무에 대해 뭐라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선배, 맛과 요리를 다루는 잡지는 뭐가 중요해요?

뭐가 중요할 것 같아.

새로운 레시피? 완성된 요리 사진?

틀렸어.

그는 자른 배추를 작은 냄비에 넣으며 그런 시장은 이미 영상으로 넘어갔다고 말한다.

진정한 미식가는 이제 활자가 아니라 영상 속에 있어. 영상 속 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평하고, 평하고 먹어. 그들이 먹으며 내뱉는 감탄사나 표정도 일종의 맛이야. 그걸 잡지가 이길 수 있을까? 레시피도 마찬가지야. 세계적인 셰프들이 생생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이든 알려주고 있는데. 요리 레시피가 무슨 소용이야. 그래도 맛과 요리를 다루는 잡지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물 끓는다. 우동 면이나 넣고 삶아.

선배는 바로 답을 하는 대신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영상 시대에 맛과 요리를 다루는 잡지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보라 했다. 사실 자기도 잘 몰라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선배는 다 익은 면을 찬물로 몇번이고 헹궜다. 그리고 큰 그릇을 꺼내서 육수를 몇번이고 부었다가 따르기를 반복했다.

결국 어디를 향해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 아닐까. 선배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무언가를 기념하고 싶은 날에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가기도 하고, 왁자지껄 사람들과 수다 떨며 식사하고 싶은 날도 있지만 혼자 조용히 먹고 싶을 때도 있다. 함께 즐기는 식사도 좋지만, 어떤 날에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와도 함께하지 않아도 썩 괜찮은 식사를 하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다. 이제 맛과 요리를 활자와 이미지로 다루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멋진 요리 사진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레시피가 아니다. 중요한 건 맛과 요리를 진심으로 대한 사람들을 어디서 찾아낼 것인가. 그들의 진심을 어떻게 꺼내어 보여줄 것인가. 결국 맛에도, 요리에도 담겨야 하는 것은 사람과 진심이 아닐까.

원탁에 업무 기기가 치워진다. 그리고 식탁보가 깔린다. 선배는 자신이 존 패브로 감독과 <아메리칸 셰프>에 대해 인터뷰한 후에 감독이 너무 즐거웠다며 선물로 주고 간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라는 건 해봤어? 맛과 요리를 다루는 잡지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 거 같아.

결국 사람과 진심이죠. 선배가 저를 위해 진심을 담아 만들어주는 채소구이 우동처럼.

뭐라는 거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유명한 사람을 섭외해서 인터뷰 따는 게 중요하지. 인마.

거절당해도 지치지 않고 섭외하려는 용기.

우동을 먹는 내내 선배는 잔소리했다. 이런 자리에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아 오늘은 퇴근하고 굶으려고 했는데.

레시피 참고 <Office Lunch magazine #1> ➊ 원문 Everything good that's happened to me in my life came because of that(cook)(내 삶에 일어난 모든 좋은 일들은 모두 요리 덕분에 생겼다) -<아메리칸 셰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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