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의 넷플릭스 <무빙>의 디즈니+
2파전이다. 비평적 호응과 산업적 성취, 모든 측면에서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와 디즈니+의 <무빙>이 한해를 압도했다. <무빙>은 “성공한 작품 하나가 플랫폼 전체를 견인하는 현상”(남지우)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올해의 시리즈이자 트렌드 그 자체로 호명됐다. OTT 대전의 후발주자이자 한국 시장의 최약체로 꼽히던 디즈니+는 “<카지노>로 구독자를 모으더니 <무빙>으로 제대로 각인”(남선우)됐고 “마블 팬들의 가입을 유도해온 디즈니+의 정체성을 본의 아니게 상기시키면서 플랫폼의 색채를 선명히 했다”(남선우). 히어로물과 스타 앙상블 캐스트의 조합이라는, 디즈니+의 차별점이 한국 오리지널 작품에서도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슈퍼히어로 유니버스의 미래에 투자해보고 싶다”(듀나)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무빙>은 “OTT발 SF 중 많은 작품이 레퍼런스가 바로 생각날 만큼 타국 작품의 아류처럼 보였다는 걸 감안하면 큰 진보고 앞으로의 시리즈 제작에 기점이 될”(박현주) 것으로 보인다.
한편 <더 글로리>는 “문화예술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넓은 범위의 대중에게까지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미친 올해의 거의 유일한 시리즈”(이우빈)였지만,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전반의 수준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올해의 시리즈 10편 중 4편을 배출하면서 “성공작도 많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작이 있었다”(남지우). <퀸메이커> <택배기사> <이두나!> <도적: 칼의 소리> 등 물량공세 속 아쉬운 필모그래피는 “유명 배우의 만남, 대형 제작비, 유명 감독도 중요하지만, 단단한 플롯은 있어야 하지 않는지”(박현주)를 질문케 했고, 넷플릭스는 “결국 <무빙>의 성공이 보여준 역설적 측면”(박현주)을 되새겨야 했다.
작품마다, 플랫폼마다 변칙적인 편성 전략을 택했다는 점도 2파전 양상의 증거다. <무빙>이 “순차 공개 방식을 택하면서 최근 OTT 시리즈 전반이 택해왔던 넷플릭스 모델(일시 전체 공개)의 공식을 깼다는 것”(이우빈)은 “경쟁력 있는 IP라면 시청자가 20부작도 거뜬히 따라온다는 사실이자 숏폼 시대에 채널 드라마의 고전적 호흡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김소미)이다. <더 글로리>는 1부와 2부 사이에 무려 두달 이상의 공백을 두는 파트제를 도입하며 “OTT 입장에서 흥행작의 화제성을 어떻게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을지에 관해 하나의 선례가 된”(조현나) 작품이다. 그러나 이같은 편성 전략이 “차후에도 연속성을 지니며 시즌2 등의 미래로 증명될지는 미지수다”(이우빈).
‘사적 복수’ 주제를 ‘폭력 묘사’로 풀어내다
폭력을 견딜 것인가, 즐길 것인가? 올해 OTT 플랫폼은 주제와 표현 방식 모두에서 폭력 수위를 한층 높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사적 복수, 사적 제재 스토리 붐을 이끈”(남선우) <더 글로리>는 ‘고데기 장면’으로 대표되는 충격적인 학교 폭력 묘사와 이후 어른이 된 문동은(송혜교)이 행하는 복수의 과정을 높은 수위로 그려냈다. 힐링 가족물로 분류되는 <무빙>마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자처했는데, 이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인 프랭크(류승범)를 등장시키면서까지 학원 로맨스에 유혈 낭자한 폭력의 리듬을 부여하여 전반부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함으로 보인다.
“플랫폼 드라마에서 가능한 도발과 파격을 추구해 화제성을 일으킨 사례”(김소미)인 <마스크걸>은 “가차 없는 여성 캐릭터”(듀나)를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고수위 폭력물이 기존의 남성적 서사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원작의 자극성과 선정성을 그 영향력이 더 직접적인 영상 포맷에서 조율”(이자연)하려는 노력이 감지되기도 했다는 점 또한 유의미하다. <마스크걸>을 시작으로 <모범택시2> <국민사형투표>, 하반기에 공개된 <거래> <비질란테> <운수 오진 날> <스위트홈> 시즌2까지 모두 웹툰 원작-고수위-피카레스크 구성을 취한다는 사실을 톺아보면, 올해의 트렌드는 “영상만이 할 수 있는 궁극의 시청각을 활용해 폭력을 ‘오락적’으로”(정재현) 논했다는 데 있음이 분명해진다.
한편 “지난해나 지지난해에 시작된 경향일지 모른다”(김혜리)는 지적처럼, 이같은 현상은 <씨네21>이 올해의 시리즈 결산을 시작한 2021년부터 감지되어온 것이다. “올해 방영한 작품들은 적어도 1~2년 전 기획돼 촬영을 마친 작품들이라 수년간 이어진 유행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김송희)는 분석을 받아든다면, 범죄, 액션, 고어, 슬래셔가 거침없이 등장하는 지금의 현상은 OTT 플랫폼과 웹툰 원작 시리즈의 강세와 함께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중파의 대응
OTT의 등장과 함께 TV의 존재 자체는 안티테제가 된 것일까. 그래도 TV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MBC <연인>은 <더 글로리>가 그러했듯 “파트 쪼개기라는 새로운 편성 전략”(김선영)을 공중파 최초로 시도하며 감질나는 시청 경험을 선사했다. 남녀주인공을 이별시킨 뒤 5주가 넘는 공백을 지나 제3의 주인공을 최초 등장시키는 도전적인 스토리텔링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원래 소강상태에 접어들어야 하는 드라마의 중반부가 예상치 못한 클리프행어가 되도록 설계되어 파트2에 대한 서사적 기대감을 낮췄다”(피어스 콘란)는 등 미드식 시즌제의 효용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식 파트제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올해의 시리즈 4위에 랭크한 <연인>과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여전히 사극 장르가 고전적 TV 시청자들의 애정을 받고 있고, 웰메이드 사극이야말로 OTT가 아직은 접근하지 못한 오래된 오아시스이자 공중파 드라마의 숨구멍임을 보여줬다. “과거 일본과의 전쟁이나 갈등을 주요 서사로 삼았던 것과 달리 올해 유독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작품이 많았다는 점”(배동미), 그리고 “그동안 드라마에서 잘 재현되지 않았던 비천한 사람들에 대한 고찰이 이뤄졌다는 점”(배동미)은 올해 언급된 잘 만든 사극의 트렌드다.
‘잔혹한 폭력 묘사’가 올해 시리즈의 테제였다면, ‘착한 서사의 힐링물’의 존재에는 안티테제로서의 의미가 있다. <일타 스캔들> <닥터 차정숙> <힙하게> <힘쎈여자 강남순>과 같은 공중파 기획은 “시리즈 하면 악독한 서사와 등치되는 시대에 연대와 공동체 회복을 판타지적으로 그린 작품”(배동미)이었다. “내년에는 잔잔물, 힐링물, 코믹한 로맨스 등 집중해서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은, 덜 잔인한 작품들이 많이 사랑받을 것”(김송희)이라는 희망에 패를 걸고자 하는 오디언스는 언제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