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들의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평균 ‘18%, 40%’다. 한국은 ‘9%, 40%’다. 보험료율을 대폭 올리지 않으면 기금이 바닥나는 시점이 앞당겨지고 3~4할대 보험료율을 짊어지는 날이 온다. 그렇지만 요즘, 보험료율은 조금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무려 50%로 올리자는 주장이 연금 개혁을 교란한다. 한국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약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소득대체율이 낮아서가 아니다. 사각지대가 넓고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이 많아서이다.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면 수혜 계층은 중상위층으로 쏠릴 뿐이다. 한국 사회는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마다 ‘더 있는 쪽’부터 챙기는 데 스스럼이 없다.
2013년에 있었던 일이다.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에 “부자는 빼고 서민만 증세하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헛소리였다. 명목 세율은 그대로 두고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방식의 증세였는데, 고소득자일수록 부담이 확 늘고 연봉 3450만원 소득자는 약간 더 부담하는 방안이었다. 증세 구간은 노동자 상위 28%까지였지만 신기하게도 세금 폭탄론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정부는 끝내 증세 대상을 좁히고 말았다. 내게는 참사 다음으로 암담한 사건이었다. 2017년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핀셋’ 증세가 있었지만, “나보다 잘사는 쪽 세금부터 올린 다음에 내 세금 올려라” 했던 중산층은 막상 그 일이 일어나자 침묵했다. 핀셋 증세는 국가 재정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대기업과 부자만 증세한 복지국가는 없다. 다수 시민의 증세는 부유층이 증세에 동의하도록 압박하고 누진세와 재분배를 통해 서민은 내는 것 이상을 보장받아왔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당성에 자신 없는 독재 정권이 조세 저항을 두려워해 복지 대신 감세로 민심을 달랬다. 한번 그 맛에 길들여진 국민은 민주화 이후에도 ‘감세 국가’를 청산하지 않았다. 중산층부터가 콘크리트를 치고 증세에 저항했다. 지난 십수년간 보편 복지가 확대되는 동안에도 보편 증세는 없었다. 중산층은 더 내는 것은 별로 없이 더 크게 보장받기만 한 것이다. 취약 계층은 손실을 입었고 보편 복지의 원칙과 명분은 훼손되었다. 중산층 이기주의는 특권층의 탐욕 이상으로 해롭다.
정권은 양대노총을 패면서도 “고용안정 노동자는 고용보험료나 세금을 더 내달라”는 말은 절대 못한다. 국회 제1당은 “다수 국민 감세는 서민 예산 증액과 같다”며 독재 시대의 조삼모사를 계승한다. 언론·검찰·역사에 펼쳐진 정치권 주전장도 중상층 위주다. 정치체제 개혁은 저버린 채 “정당은 당원의 것”이라 외치는 건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며 집주인 말고 다 몰아내는 꼴이다. 처지가 빠듯한 사람들은 단지 바깥을 헤매다 가끔 최악을 골라 심판하는 분풀이에 그친다. 악순환을 끝내려면 연 3천만~5천만원쯤 버는 시민들이 먼저 “내가 더 부담하겠다”는 증세-복지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을 열두 광주리를 꾸린 이래 불변의 진리가 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대변하며 내 것부터 내놓는 순간 역사는 발전하고 인생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