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의 평범한 풍경을 담은 브이로그와 자퇴 이후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에 합격한 순간을 담은 브이로그 영상. 10대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진솔하게 잘 담겨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왼쪽부터)
두 시간 분량의 영화 호흡을 버거워한다, 짧게 반복되는 영상에 중독되었다, 집중력 유지 시간이 부쩍 짧아졌다…. 숏폼 플랫폼의 주요 이용자인 10대 청소년을 둘러싼 무성한 말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인 콘텐츠 소비 패턴을 지적하며 시작된다. 쏟아져 나오는 숏폼 영상에 10대 시청자가 쉽게 휩쓸릴 거라는 예측과 오락성의 자극에 이미 무뎌졌다는 해석을 기반으로 어른들의 우려는 더욱 커져갔다.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도마 위로 호출당하는 10대 아이들도 같은 입장일까? 어른들의 말마따나 1318세대는 정말 콘텐츠의 중독성 앞에서 무력하기만 할까?
‘2023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리포트’에 따르면 전 연령대 중 10대가 숏폼을 가장 오래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숏폼 이용 시간은 63분으로, 30분대를 웃도는 20대~50대의 답변과 비교하면 10대 시청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아이들도 이를 체감한다. 안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이서빈 학생은 “주변을 둘러볼 때 95% 이상의 아이들이 숏폼 콘텐츠를 소비한다”며 숏폼이 또래 문화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설명했다. 유행에 따라 교실 풍경도 바뀐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챌린지를 시도하고 서로가 공통된 정보를 알고 있다는 안정감을 바탕으로 관계망을 굳건히 해나간다. 호기심을 일으키는 가벼운 도전들은 안온한 소속감을 기반으로 아이들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여기까지는 인터넷이 처음 등장하고, 미니홈피가 나타나고, 스마트폰이 생겨난 특정 기점의 10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자세는 10대 청소년의 보편적 특성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에 출생한 지금의 1318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전에 없던 문화적 생존 기술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특이점을 지닌다. 바로 뉴 미디어와 SNS, 숏폼 플랫폼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고립감에서 해방되는 순간
어려서부터 SNS와 가까웠다. 현재 10대들은 기억에 사뭇 희미하게 남아 있는 싸이월드부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제페토까지 다양한 형태의 SNS를 쉬지 않고 거쳐왔다. 그러한 이유로 온라인상에 형성되는 관계를 현실세계의 것과 다르지 않게 받아들이고, 광장 중심으로 향하는 심리적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실제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숏폼 플랫폼에 전면으로 나서기도 한다.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숏폼 플랫폼에 계정을 만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클립 영상을 게재한다. 일명 ‘떡밥’ 만들기. 누군가가 팬메이드 영상을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선정해서 업로드한다.”(고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김가현 학생) 언뜻 보기에 과거의 팬 활동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진·그림·글 등 다양한 창작 영역에서 아이들이 영상, 그것도 클립 영상을 선택한다는 것은 많은 함의를 지닌다. 먼저 아이들은 영상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번거로워하지 않고, 팬들의 열기를 지속시킬 연료로서 클립형 숏폼 영상이 어떤 효용성을 가졌는지 경험적·전략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남들이 정해주는 게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큐레이션해내는 문화적 능동성 또한 눈에 띈다. 딥다이브(deepꠓdive), 디깅(digging) 등 좋아하는 것에 골몰하고 몰입하는 세대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이 활동을 통해 외로움을 탈피하는 아이들도 있다.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상담하는 전문 상담교사 A씨는 “학교에서 마이너 감성으로 꼽히던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플랫폼에 게재하며 같은 관심사를 지닌 타인의 존재를 깨달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어 노래를 번역해 영상을 업로드하던 학생은 직접 제작한 창작물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취향이 어딘가에선 공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립감에서 해방될 방안을 스스로 찾아내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이 사회가 규정한 마이너가 아니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전문 상담교사 A씨) 문턱 낮은 자유로운 숏폼 플랫폼의 이점은 경계성 지능 청소년들에게도 적용된다. 경계성 지능은 평균 학생보다 학습 속도가 느리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보편적인 학교생활을 누리기 쉽지 않지만, 장애로 판정되지 않아 특수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경계성 지능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에서는 숏폼 플랫폼을 이용한 수업 활동을 이어간다. 신지수 강남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 임상심리사는 기획부터 연출까지 콘텐츠 제작 활동을 경험한 경계성 지능 청소년들의 자기 확장 가능성에 대해 전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지하며 위축되기 쉬운 경계성 지능 청소년들은 일상에서 감정 표현을 충분히 하기 어렵다. 특히 청소년기는 자기표현의 욕구가 큰 시기인 만큼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험이 중요하다. 분량이 길지 않고 구성도 만듦새도 제각각인 숏폼 콘텐츠 세상에서 아이들은 궁극적으로 자기 효능감을 얻을 수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물론 위험성도 크다. 아이들이 편향된 정보에 노출되거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접할 가능성도 높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들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학생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숏폼 계정을 운영하지 않았고(소비만 하는 편이다), 숏폼 플랫폼에 자신을 전면으로 내세우지도 않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SNS에 자신을 노출시킨 사람들의 결말이 어떤지 잘 알아서’, ‘내 사진과 영상이 어떻게 변용될지 모르기 때문에’, ‘외부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레 디지털 기술을 체득했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아도 목격하게 된 무수한 사건을 통해 공통된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10대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플레이그라운드가 완성됐으나, 어른들의 현실이 여기서도 그대로 복제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은연중 아이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밴 질문(아이들은 숏폼 콘텐츠로 어떻게 바뀌었는가?)이 아닌, 애초 그것을 시작하고 그 안에 볼거리를 제공한 어른들을 점검하는 것으로(어른들은 청소년에게 적합한 플랫폼을 제공했는가).마지막으로 “숏폼 콘텐츠 때문에 집중력이 저하되었다는 어른들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날카로운 한마디를 남긴 학생도 있었다. “이젠 TV나 영화만 있는 시대가 아니다. 즐길 거리가 이토록 다양한 세상에서 재미없는 것을 못 견뎌한다고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하는 건 억울하다. 우리가 어떤 콘텐츠를 완주하길 바란다면 어른들이 재미있게 만들면 된다. 우리만큼 재미있는 걸 깊게 파고드는 세대가 어디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