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강(40) 감독의 장면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가 8일(현지시간) 폐막한 26회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www.annecy.org에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애니메이션의 ‘칸 영화제’라 불리는 안시 페스티벌 장편 경쟁부문에서 한국 작품이 수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99년엔 이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덤불 속의 재>가 한국 작품으론 처음으로 이 페스티벌의 단편 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이 감독의 수상은 지금까지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 생산기지’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던 한국 애니메이션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돋보이게 만든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마리 이야기>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지금은 도회지 한복판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청년 남우의 회상 형식을 빌려 어린 시절의 꿈과 환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서정적인 이야기다. 폭풍우가 아버지를 삼킨 뒤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외로운 소년 남우는 낡은 등대에서 우연히 ‘마리’라는 환상 속의 소녀를 만남으로써 천천히 닫힌 마음을 열어간다. 이야기를 억지스럽게 극화시키지 않고 현실과 환상을 엇갈려 보여줌으로써 성장기 소년의 내면 정서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힘을 쏟았다. 컴퓨터 작업을 통해 3차원으로 그린 배경과 2차원으로 그린 인물을 부드럽게 어울리도록 한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작품이 표현하고자 한 환상과 파스텔톤의 색감도 잘 어울렸다는 찬사를 들었다. 바닷가 마을과 서울의 도회지 풍경을 실제로 스케치한 배경 화면과, 실제 인물을 찍어 그림으로 옮긴 인물들의 동작도 연결이 자연스럽고 정밀하다는 평을 들었다.
이성강 감독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90년대 중반부터 그림을 그리다 애니메이션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 감독은 지금까지 <두 개의 방>, <넋>, <토르소>, <연인>, <우산>, <낫> 등 여섯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지난 1956년 프랑스 칸 영화제의 비경쟁 행사로 시작한 이 페스티벌은 60년 안시로 무대를 옮겨 애니메이션 전문 공모전으로 바뀌었다. 격년으로 열리던 이 페스티벌은 97년부터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축제로 자리잡았다. 그 동안 프레드릭 백의 <나무를 심은 사람>(1987),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1993), 빌 플림턴의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1997)와 <뮤턴트 에일리언>(2001) 등 이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의 걸작으로 인정받아왔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