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통이 옛날부터 너무 보수적이었다는 말이 있더라.”(어느 정치 평론가) “법조 기자할 때 대화를 나눠본 윤 검사는 전혀 극우적이지 않았다.”(모 언론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성향을 두고 정치권 주변 사람들은 ‘선천설’과 ‘후천설’로 나뉜다. 나는 후자다. 보수우익적이다 싶은 것을 강박적으로 모아놓은 정책 체계가 되레 수상하다. 이명박씨와 박근혜씨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는 거울 보고 작심한 사람 같다. “어이 브러더, 이제 고만 선택해라.” 여당의 보궐선거 참패 이후 ‘국정기조 전환’에 관심이 모인다. 나는 그런 것은 없거나 있어도 총선 전까지라는 쪽에 건다. 정치9단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중반 전두환 세력을 단죄하고 총선에서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올렸지만, 그 이후 야당 의원 빼가기, 공안 정국 조성, 노동법 및 안기부법 날치기로 치달았다. 지지 기반이 어느 쪽이냐에 달린 일이다. ‘호랑이를 잡는다’는 포부도 ‘호랑이굴’이라는 조건을 이기지 못했다.
“(민주당에서) 이탈한 진보 세력까지 아울러 승리해야 집권 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도모할 수 있다.” 정치에 처음 뛰어들 때만 해도 이랬던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꼴보수식 망언을 거듭했다. 결국 그는 같은 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에게 중형을 구형한 불순분자 이력에도 불구, 터줏대감들의 견제를 꺾고( “거, 준표 형, 이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그 당을 접수했다. 그는 대선 본선에서도 역대 유력 후보들과 달리 유연함이나 포용성을 내비치지 않았다. 꺼진 불도 다시 보며 극성 지지층을 고무하고 또 고무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를 휘감은 각종 리스크다. 고발사주 관여 의혹, 여러 부실 수사 논란, 배우자의 재산 관련 의혹과 허위 이력…. 군소 정당이나 신당이나 당내 혁신파의 길을 가는 정치인은 저 의혹의 일부만 있어도 힘에 부쳐 정치를 접어야 한다. 거대정당 주류 인사는 위기를 넘기거나 낮추거나 늦출 수 있던 것이 한국 정치사였다. 정책적 업적보다 권세와 자기 안전이 우선이라면, 자신이 철옹성이라 믿는 공간에 눌러앉게 된다. “하,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그도 중간중간 기조 전환을 다짐했을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잠깐 흘러나온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대선 막바지 외신 기자 앞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칭한 것도 그렇게 준비한 카드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핵심 지지층은 국민의힘의 혁신을 집요하게 막던 이들이거나, 본래 국민의힘 지지층이 아니었지만 ‘국힘보다 더 국힘스러워진’ 이들이다. 그는 그들의 덕을 봤고, 그들을 거슬렀다가 버려질지 모른다는 근심을 떨칠 수 없다(“만에 하나 나 살면 어떡할라 그러냐. 너, 감당할 수 있겠냐?”). 현직 대통령 최초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을 보라. 윤 대통령은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바위는 세월에 풍화되지만, 사람은 경계에 의해 풍화된다.” 정당운동가 고 이재영(전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이 2012년 마지막 칼럼에서 남긴 말이다. “그 사람의 이념과 정책과 문화와 소신과 언행이, 처한 곳의 향취에 젖는다. 이것이 돌의 물리학과 인간 유물론 사이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