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작 <목화솜 피는 날>은 세월호 참사로 딸 경은을 잃고 단기 기억 상실이 온 아버지 병호가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과 그들 사이의 갈등, 그리움과 함께 사는 삶을 안산, 진도, 목포라는 세곳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곡진히 담아낸다. 신경수 감독이 연출하고 박원상 배우가 병호 역을 맡은 작품은 지난 5월 촬영을 마쳤으며 내년 4월 OTT 공개를 목표로 후반작업 중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의 지지 속에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가족들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영화 최초로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촬영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에 관한 희곡을 쓰고 연극 연출을 해왔던 구두리 작가는 이번 당선으로 시나리오작가로도 불리게 됐다.
- 첫 시나리오 작업이라 어려움이 따랐겠다.
= 정말 처음이었다. 시나리오는 신 번호를 붙이고 날씨 같은 구체적 상황을 적어야 한다는 기본 작법부터 익혀야 했다.
- 수상 소감에서 시나리오 집필 제안을 받아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 지난해 12월에 신경수 감독님이 연분홍치마가 제작하는 세월호 10주기 극영화의 연출을 맡았는데 내게 이 작품의 각본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말씀 듣고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다. 팽목항에 자원봉사를 갔었고 추모객을 위한 도보 순례길인 팽목바람길을 꾸준히 오가면서 세월호 참사 관련 작품을 해보고 싶었으나 그간 엄두를 못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2월까지 완성을 부탁하셔서 그다음부터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유가족이 주인공인 30쪽짜리 초고 먼저 빠르게 쓴 뒤 신 감독님, 이지윤 PD님과 함께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갔다. 9년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공간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 세월호 유족 다수가 지금까지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고 알고 있어 병호가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이 납득이 됐다. 이 주인공을 통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나.
= 유가족을 인터뷰하면서 그런 증상을 보이는 분들을 워낙 많이 만나다 보니 내게는 기억 상실이 자연스러운 설정이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하루 동안 지금껏 자신을 도와준 사람, 비난하고 무시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랐다.
- 10주기를 맞이해 제작되는 작품에서 안산, 진도, 목포라는 세 장소를 고루 다루는 일이 왜 필요했나.
= 참사 뒤 독일로 다크 투어를 갔다. 역이며 광장이며 과거를 반성하고 희생자를 기억하는 공간과 일상적인 공간을 엮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공간으로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로써 진실을 밝히자고, 기억하자고 하는 건 이제 듣는 이에게 피로감과 거부 반응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이 처음 올라온 팽목항, 세월호가 서 있는 목포 신항 등을 주인공이 거쳐 가는 동안 그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 쉬쉬하는 듯한 세월호의 공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목화솜은 열매지만 너무 고와 두 번째 꽃이라고 불린다”는 마지막 라디오 멘트에서 제목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 목포가 목화를 많이 키우던 지역이라 목화 이야기를 극 안에 끌고 들어오고 싶었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이 다시 태어나서 마음껏 누리는 새 삶을 살길 바란다는 염원으로 <목화솜 피는 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 이번 작업이 개인적으로 지난 9년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됐을 것 같다.
= <목화솜 피는 날>을 연극으로 올릴 준비를 얼추 끝낸 상황이다. 마무리 작업을 하는 기간이 내게는 또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