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상영작 스틸을 활용해 만든 행사장 입구의 조형물.
“우리는 훨씬 끈질기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그에 맞춰 ‘RE: Discover’를 키워드로 여성영화의 걸작을 재발견, 재조명하는 포럼이 진행됐다. 국내뿐 아니라 대만과 독일, 일본의 여성영화제 관계자 및 여성학자들이 참석해 시대와 함께 변화해온 여성영화(사)의 흐름을 짚고 연대의 장으로서 기능하는 여성영화제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8월28일 오후 4시, 평일 낮임에도 영화제가 치러지는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많은 이들로 북적였고 3시간가량 이어진 포럼 또한 관객들이 집중해 경청했다.
“쉽게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
사이토 아야코 메이지가쿠인대학교 교수의 기조 발표가 이날 포럼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1970년대 이후로 근 50년간 ‘여성영화’의 개념 및 용어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살폈다. “영화 복원을 통해 여성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다시금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처럼, 여성영화에 대한 유산과 아카이브를 지키는 것은 여성들간의 경험과 창조적 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다소 유토피아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페미니스트로서 이런 희망을 쉽게 타협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로 연설이 끝나자 객석에서 동조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황혜림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권은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 로페이치아 대만 위민메이크스웨이브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독일 도르트문트+쾰른국제여성영화제의 슈테파니 괴르츠 시니어 큐레이터가 토론을 펼쳤다. 각국 영화제의 시작점과 당면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영화제가 여성운동과 맞물려 등장했다는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1990년대, 대만에선 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 운동이 일면서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의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자 하는 전환이 일었다”.(로페이치아 집행위원장) 독일 역시 1984년 남성의 시선과 관계없이 여성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볼 수 있다는 운동이 일면서 여성영화제가 생겼다. 권은선 집행위원은 “199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 여성감독 수는 7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수백명의 여성감독을 배출하고 작품 속 여성 캐릭터의 다양화 등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극장을 찾는 관객의 발길이 뜸해진 현재, 영화제는 어떻게 연중 행사로서의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숙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와다 마르시아노 미쓰요 교토대학교 교수, 김채희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 대표 겸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합석해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여성영화제를 포함한 영화제의 수가 많다는 의견에 김채희 대표가 “사람들이 왜 영화제에 오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주지했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 관람 이상의 열망을 안고 영화제를 찾는다. 광주 등의 지역에서도 관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지역의 성폭력 이슈나 페미니즘 운동에 관한 논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숙경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관객의 계층과 세대 차를 줄이는 방법에 관해 화두를 던졌다. 슈테파니 괴르츠 시니어 큐레이터는 “우리도 관객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담당 팀을 신설했다.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찾아가겠다는 의지로 야외·공동 상영을 하는 등 모든 계층의 관객이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