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3번 버스를 좋아했다. 그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좀 떨어진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시간도 많고 체력도 충분했다. 일단 타기만 하면 종로까지 한번에 갈 수 있으니 감수할 만했다. 서점과 음반 가게, 영화관 등 중학생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게 있는 종로. 버스가 서울역을 지나 남대문을 끼고 돌 때면 앞 유리창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쭉 뻗은 길을 보면 마음이 트였다. 일요일의 도심을, 눅눅한 집과 서늘한 학교를 잊고 쏘다녔다. 영화관 입장권은커녕 메모지 묶음 하나 살 돈도 없을 때가 실은 더 많았지만, 새것을 실컷 보는 나들이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갈 때면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떨어졌다. 남대문시장쯤으로 걸어와 57번이나 58번 버스를 탔다.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탈 수 있는, 타야 하는 버스도 늘어갔다. 나는 ‘빠르고 정확한’ 지하철보다 ‘확실하지 않은’ 버스를 더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몇번 버스가 얼마나 자주 오가는지, 어디서 어떤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지, 차라리 걷는 게 나은 구간은 어디인지를 생각해서 경로를 짜는 게 좋았다. 가끔은 선택이 잘못되어 엉뚱한 동네를 헤매기도 했다. 덕분에 골목골목을 발로, 눈으로 익혔다. 나는 아는 게 점점 많아졌다. ‘길 찾기 앱’이 없던 시절이지만 어지간한 서울 버스 노선은 다 내 손바닥에 있었다.
물론 어릴 때처럼 버스 타는 일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출퇴근길 몸과 마음이 고단할 때 만원 버스는 사실 지옥 같았다. 남과 이렇게까지 가깝게 몸을 대고 있다는 게 싫었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에도 몸서리를 쳤다. 남들도 지금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수입과 지출을 나란히 적으며 어디서 돈을 더 아껴야 할지 고민할 때 교통비가 생각보다 많이 든다는 걸 알고 놀란 적도 있다. 그렇다고 줄일 수도 없는 항목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은 것 같다. 그래도 가끔 버스가 한산하거나, 운 좋게 혼자 앉는 자리를 차지했거나, 어떤 이유로 기분이 좋거나 한 날은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못 보던 가게, 계절마다 달라지는 거리 풍경을 가만히 앉아서 본다는 게 무슨 혜택처럼 느껴지곤 했다.
버스를 좋아한다. 다만 언젠가부터 버스를 타기 어려운 사람들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유아차가 필요한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지팡이를 짚은 사람, 교통카드가 없는 사람. 분하게도, 만원 버스에 시달리는 일이나 멍하니 창밖을 보는 일이 실제로 혜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울버스와 광역버스 요금이 대폭 오른 뒤로 가난한 사람도 교통 약자라는 점을 생각한다. 누구보다 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제일 멀리 있다. 우리 삶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버스는 노선이 어떻게 되는 걸까. 얼마만큼 걷고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 걸까. 자꾸만 경로를 다시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