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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당이 있는 집’ 배우 최재림, 부지런히 도전하는 마음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23-07-13

압도적인 성량과 발성, 해를 거듭하는 동안 점점 완숙해지는 해석력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뮤지컬계의 스타 최재림이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으로 매체 연기에도 기세 좋게 시동을 걸고 있다.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으로 TV 앞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상대역인 배우 임지연이 ‘먹방’으로 뜻밖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원인 제공자다. 수시로 폭력을 일삼는 남편 윤범은 그동안 최재림이 맡은 배역 중 뮤지컬과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호감을 구하기 힘든 악역이지만, 최재림은 그럴수록 자신의 캐릭터를 파고드는 끈기 있는 승부사다. ”제 몫은 다한다“가 가훈인 군인 집안 출신의 배우에게 이번 생의 제 몫은 활자로 잠들어 있던 인물의 매력적인 소생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마당이 있는 집>에 합류하게 된 과정은 어땠나.

= 윤범의 죽음이 극 초반의 가장 큰 사건이고 미스터리의 중심이긴 하지만 극을 끌고 가는 나머지 세 인물에 비해서는 사실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다. 그래서 제작진이 신선한 이미지를 찾는 데 좀더 주력한 게 아닐까 싶다. 조감독님이 <그린마더스클럽>속 내 모습을 캡처해 감독님께 보여드렸다고 한다. 사실 거기선 밝은 이미지인데, 감독님은 오히려 외양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여러 이미지로 달라보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신 것 같다.

- 리딩 현장이나 촬영장 메이킹 필름을 보면 윤범이 너무 악역이라 고단해하는 모습이 슬쩍슬쩍 나오더라.

= 나쁜 놈이니까 더 연구했다. (웃음) 어떻게든 그 남자의 심리를 파고들어보려는 쪽이었다. 원작 소설을 재밌게 읽으면서 떠올랐던 의문 중 하나가 ‘이 남자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집요한가’였다. 소설엔 부모를 일찍 여읜 후 아등바등 살아남으면서 깊은 열등감을 내재한 인물이란 점이 서술된다. 상은과 결혼할 때 남들에게 없어 보이지 않으려고 형편에 맞지 않는 화려한 식을 올렸다는 묘사도 있다. 자기의 배경과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 뒤집어버리고 싶은 사람, 그렇게 악착같이 살다가 정말로 꼬이고 나빠진 사람을 생각했다. 여러모로 인물들의 심리가 살벌하게 묘사돼 있는 소설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 제약회사 직원인 윤범은 퇴근 후 집 안에서도 포마드 헤어를 유지한 채로 흰색 러닝만 입고 나오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세팅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무대 위의 최재림과 특히 대조되어 재미있었다.

= 겉옷 셔츠만 갈아입고 곧바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소설 속의 그 적나라한 모습을 드라마팀도 그대로 구현하고 싶어 했다. 덕분에 나 역시 윤범을 연기하는 동안 여전히 무대 연기와 매체 연기의 차이를 상기하게 되는 어색한 순간들이 있었다. 공연을 할 땐, 내가 맡은 역할이 멋있든 추레하든 그 안의 감정이 어떤 것이든 기본적으로 객석을 향해 매력과 존재감을 어필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섹시해야 한다고 할까? 그런데 매체 연기는 그런 의도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는 순간 망한다. (웃음) 표현의 범위와 크기를 조절하는 과정을 지금 계속 배우고 있는 셈이다.

- 두 번째 드라마인 <마당이 있는 집> 촬영을 끝낸 지금, 소감이나 자평을 들려준다면.

= 여전히 내가 하고 싶었던 연기와 결과물 사이에 아쉬움이 조금 있다. 지금까진 최대한 덜어내려 했다. 무대에서처럼 포인트를 주려고 하지 말자, 하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런데 이번에 모니터링을 하면서 카메라에 담기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필요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표현했어야 하는 부분들이 보였다고 할까.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연구하고 싶은 점이 많다.

- 그동안 악역은 드물었는데, 데뷔 초에 뮤지컬 <남한산성>에서 연기한 정명석 정도가 있겠다.

= <남한산성>! 성악을 배우다 대뜸 뮤지컬을 시작했으니 데뷔 초엔 양손을 어디 두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남한산성>에선 무언가 고민을 할 여력도 없었다. 힘들었던 시절이다. 그저 더 세게, 더 크게 에너지를 분출하는 식으로 일단 버텼다. 그러다 2013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잠시 배움의 시간을 가졌고, 돌아와 간만에 무대에 올랐던 작품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였다. 그땐 또 예술가적 에고가 너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인물이 정적으로 고민하는 장면인데 나 혼자 괜히 이런저런 해석과 표현을 곁들여보면서 멀리 나아가곤 했다. 대학원에서 배운 걸 얼른 써먹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웃음)

- 연극원에서 2년을 보낸 뒤 돌아온 이후 지금껏 일을 쉰 적이 없다.

=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사실인 것 같기는 하다. 일한 양을 봐서는…. 재미있으니까 계속한다. 그리고 계속하다보면 잘하고 싶어진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오면 함께 작업한 제작사들로부터 연쇄적으로 제안을 받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꾸준히 일해올 수 있었다. 물론 마냥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 언제가 위기였나.

= 지지난해 비슷한 기간에 공연을 여러 개 동시에 올렸다. 지방 공연과 서울 공연 스케줄이 겹치면서 세 작품에 동시에 출연해야 했다. 캐릭터의 격차, 외워야 할 분량 등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인 데다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공연에 올라가야 한다는 그 절대성을 생각하면 사실 이런 겹치기 출연은 하지 않는 게 맞다. 그런데 그때는 잠깐 무슨 생각이었는지 내가 가진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마음 한켠에 다 해낼 수 있다는 묘한 도전 의식도 있었던 것 같다. 이때 고생한 뒤로 일을 좀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일할 때가 좋은 건 마찬가지다.

- 2019년에 데뷔 10주년을 맞이했고, 2021년에 <시카고>의 빌리 플린 역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성기를 어렴풋이나마 체감했나.

= 30대 중반을 지나면서 빌리 플린을 맡았으니 젊은 빌리 플린에 속했다. 오디션 볼 때도 내가 조금 어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너무 신기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고 남우조연상도 받았다. 이 일을 10년 동안 계속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상까지 받으니까 아마도 확실히 욕심이 났던 게 아닐까. 더 이어가보자, 더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이 생겼던 건 그래서일 것이다.

- 앞서 언급한 무대 연기에서 필요한 ‘매력’ 이야길 하자면, 최재림의 빌리 플린은 그걸 극대화한 경우일 것이다. 최재림다운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확실히 캐릭터성에 관심이 많다. 사실 빌리라는 이 남자, 지독하게 이중적인 사기꾼 아닌가. 그런데 연기하는 나조차 그런 생각을 갖고 표현해버리면 오히려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당시에 해외에서 협력 연출로 온 티냐 나디니의 디렉션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빌리의 이중성을 모두 진심처럼 연기하라고 말하는 대신 “빌리는 너희들을 사랑해. 빌리는 자기 일을 정말 사랑해!”라고 말했다. 배우 입장에선 이 남자의 비열한 면모를 연기적으로 더 표현해보고 싶은 욕망도 어쩔 수 없이 생기기 마련이라 갈팡질팡한 순간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티냐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돌려세우곤 했다. “재림, 네가 뭘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다시 우리가 가야 할 길로 돌아와줘. 작품을 믿어야 해”라고. (웃음)

- 아직도 2011년 방영한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에 박칼린 음악감독과 함께 출연했던 이력이 회자된다. 그만큼 커리어 초기에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계기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시기였다고 보나.

=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 되게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비슷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 연락이 오기도 하고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제안도 들어왔다. 방송을 하다가 어쩌면 소모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인생의 행운 중 하나는 박칼린 선생님, 전수양 작가님을 비롯해 주변의 여러 스승과 특히 가족들까지 나를 다잡아주는 강한 사람들이란 점이다. “지금의 화제성 같은 건 네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과 너무도 다른 거 알지? 지금 정말 조심해야 하는 순간인 거 잘 알지?” 그때 주변에서 계속 그렇게 일깨워줬다. 내가 추구할 것과 상관없는 것이 무엇인지 덕분에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다.

- 근면하고 절도 있는 군인 집안의 분위기로부터 체득한 태도도 있을 듯싶다.

= 집안 가훈이 “자기 몫을 다하자”이다. (웃음) 아버지는 자수성가했고 어머니도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나셨다. 9살 때 윤선생 수업을 하러 집에 오신 선생님 앞에서 해이하게 행동했다가 아버지께 호되게 혼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쉽게 들뜨지 않고 쉽게 좌절하지도 않게 된 것은 분명 가풍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노래하는 재능은 일찌감치 알아차렸나.

= 어렸을 때부터 늘 재롱 부리는 타입이긴 했다. 친구들하고 노래방 가면 점수가 잘 나오니까 노래를 못하진 않는구나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올라갈 무렵 내가 음악쪽에 습득력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형은 공부를 잘했고 나는 영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예체능이라도 시켜보려는 부모님의 판단도 있지 않았을까 싶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해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쭉 성당 성가대 활동을 하다가 성악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 2009년 뮤지컬 <렌트>의 콜린으로 데뷔해 <넥스트 투 노멀>의 게이브,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와르, <킹키 부츠>의 롤라, <시카고>의 빌리 플린 등 주요 배역을 섭렵하고 이제는 <오페라의 유령> 속 팬텀 역까지 앞두고 있다. 어떤 팬텀을 보여주고 싶나.

= 팬텀은 사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감금, 가스라이팅, 협박, 갈취 등을 저지르는 굉장히 반사회적인 인물 아닌가. 그렇기에 원전의 힘이 잘 발휘되도록 팬텀 자체의 매력을 살려야만 한다. 적어도 극을 즐기는 동안엔 그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도록. 역할의 상징성에 비해 사실 분량은 적다. 다섯 장면 정도 나와서 연습 스케줄도 7월 말부터 잡혀 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2시간 내내 나온 것만큼의 강렬함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또 뮤지컬 장르에서는 클래식한 축에 속하기 때문에 음악이 가지고 있는 디테일, 특히 표현적인 부분에서 깊이를 보여주고 싶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을 테니 표정이란 수단이 사라진 자리를 채워줄 디테일은 무엇이 될지도 찾아보고 싶다. 손짓일 수도, 음색일 수도, 곡의 해석 방향일 수도 있다. 팬텀을 잘해내고 나면 또 내 안에 좋은 재료가 쌓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 올 상반기에 몇년 만에 3개월 정도 푹 쉬는 시간을 가졌다고. 곧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15년의 구력을 자랑하는 자취 생활의 면면도 보여준다. 최재림에게 요즘은 어떤 시기인가.

= 너무 쉬어서 빨리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기? 저녁 7시만 되어도 일과가 모두 끝나버려서 시간을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정도다.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요즘이다. 빨리 연습실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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