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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너만이 날 울게 하는
복길(칼럼니스트) 2023-07-20

“K팝이 왜 슬퍼요?” 한 패션지 기자가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고 적힌 포스터 앞에 서서 내게 물었다. 나는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만 너에게서 좀더 기가 막힌 대답을 듣고 싶다’라는 그의 표정을 최선을 다해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모호한 제목으로 공연을 열고 입장료를 받았으니, 그럴듯한 의미를 만드는 것 역시 내게 주어진 몫이었다.

“흔히 K팝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죠. 미성년자 아티스트에 대한 착취와 초과노동, 커다란 팬덤을 확보한 남자 아이돌 멤버의 부도덕한 사생활, 경쟁적으로 벌이는 소모적인 팬 활동, 그로 인해 그들에게 가해지는 경멸적인 시선….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K팝에만 심장이 뛰는 나 자신까지. 노래를 노래로만 즐길 수 없는 복합적 슬픔이랄까요?”

말을 하는 내내 스스로가 사기꾼처럼 느껴졌다. 당신의 기대 너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려주려 했는데, 내 입은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쉬지 않고 대의를 만들었다. K팝이 왜 슬프냐니. 가요란… 아니, ‘뽕’이란 원래 슬픔을 표현하고, 즐기고, 이내 그 고통을 잠재우기 위한 산물인 것을….

이사를 도와준 친구와 쟁반짜장을 나눠 먹으며 ‘티아라 메들리’를 들었다. 커다란 쟁반에 든 짜장면을 보고 이걸 누가 다 먹냐, 했지만 고된 육체 활동 탓인지 우리는 말없이 모래성 뺏기 하듯 짜장면을 흡입했다. 그릇의 바닥이 보일 때쯤 친구는 여전히 면 속에 숨은 해물을 찾는 나를 향해 물었다. “가사가 너무 유치하지 않아?” 온 얼굴에 짜장을 묻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듣는 것은 ‘티아라 메들리’인데 ‘유치한 가사’는 어떤 노래를 가리키는 것인가? 나는 그 어이없는 질문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티아라는 ‘유치한 것’을 깊고 심오한 욕망으로 승화하는 그룹인데 ‘유치하지 않아?’라니? 존재를 부정하는 몹시 경솔한 질문이네.”

“꽂혀, 꽂혀, 꽂혀, 내가 너에게로 꽂혀, 꽂혀. 이런 가사가 무슨 심오한 욕망을?” 친구는 참 뭘 모르는 아이였다. ‘돌아 돌아 돌아 내가 이러다가 내가 돌아’,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철없게 철없게 철없게 철없게 철없게 살다가 내가 미쳐’. 그들의 가사에는 은유가 없고 표현에도 부연이 없다. 너 때문에 정말 미쳐버리겠다는 말을 이보다 더 깨끗하게 할 수 있던가? 단어의 반복과 멜로디의 절제에 더해진 은정의 ‘무아지경 댄스’는 미치기 일보 직전인 나의 정념을 달래주는 유일한 몸짓이었다. 친구가 짜장면 그릇을 설거지하는 사이 어느덧 메들리는 클라이맥스인 <넘버나인> 구간에 접어들었고 잠시 딴소리하던 친구가 기습적으로 말했다. “네 말 다 잘 들었는데. 그럼 이 노래는? 대체 ‘넘버나인’이 무슨 뜻인데? 넌 알아?” 나는 또 한번 말문이 막혔다. 왜냐하면 이번엔 진짜 몰랐기 때문이다.

〈넘버나인>은 누가 뭐라 해도 티아라 노래 중 내 최애 곡이다. 내 주변의 퀴어 친구들이 유독 좋아하는 곡이기도 한데, 그 점이 이 노래를 더 좋아하게 만든다. 글을 쓰기 전에 그들에게 대체 이 노래가 왜 좋냐, 물으니 어떤 게이는 “끼가 맞다”라고 하고, 어떤 트랜스젠더는 “뽕이 좋다”라고 한다. 끼가 무엇이고, 뽕은 무엇이냐. (각자의 해석이 있겠지만) LGBTQ 혐오자들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게 뭔지 대충 감을 잡게 되는 바로 그것이다. 노래는 전주부터 기타 소리에 맞춰 우~, 우~, 우~ 하는 구슬픈 음을 쌓다가 돌연 시끄러운 일렉트로닉 비트로 바뀐다. 비트에 맞춰 표정 없이 춤을 추던 티아라 멤버들이 다시 아련한 얼굴로 호소한다. ‘당신은 날 너무 아프게’만 하고, ‘당신은 날 들었다 놨다’ 한다고. 끼와 뽕이라는 것은 결국 슬프고 아픈 내 맘을 몸이 부서져라 흔들어 승화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곡가 인터뷰에 따르면 티아라의 〈넘버나인>은 미국 밴드 더 클로버스가 1959년에 발표한 <Love Potion No.9>에서 차용한 개념이라고 한다. 원곡은 숫기 없는 남자가 집시에게 ‘9번’이라고 적힌 사랑의 묘약을 구매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키스를 하다 경찰에 잡혀간다는 내용인데, 우리나라에선 영화 <태양은 없다> 속 이정재, 정우성의 ‘간지 테마곡’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Love Potion No.9〉을 재생하니 친구가 반갑게 소리쳤다. “아 이 노래 알지! 이거, 전근표 응원가야! 한화 이글스에서 딱 1년밖에 안 뛰었는데 응원가는 전설로 남아 아직까지 회자되고. 한화의 섹시 가이 전근표! 날려버려, 날려버려, 날려버려라! 한화의 섹시 가이! 전! 근표입니다!” 친구가 노래를 부르자 〈Love Potion No.9〉에 이정재, 정우성의 젊고 앳된 얼굴과 〈넘버나인〉에 맞춰 춤추는 티아라의 슬픈 몸짓, 한화의 섹시 가이 전근표가 난데없이 하나로 섞여 위험한 노래가 되었다. 그래 이것이 K팝이다. 세상의 모든 이미지가 알 수 없는 배열로 섞여 커다란 심상을 이루는….

K팝이 왜 슬픈가? 나도 모른다. 나는 누가 울면 운다. 누가 춤을 추는 것을 봐도 운다. 그런데 누가 울면서 춤을 춘다? 나는 대성통곡을 한다. 누군가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만큼 나를 울리는 것은 없다. 그래서 단조로 된 댄스음악은 비트가 빠를수록, 안무가 격렬할수록 그 슬픔이 배가된다. ‘무화과 꽃도 피게 만들었던 그때’란 눈물 같은 가사와 ‘I’m Addict, I’m Addict, I’m Addict’라는 경고음 같은 가사가 함께 있는 노래라면 나는 울지 않을 수 없다. K팝이 왜 슬픕니까? 아, 나는 이제 안다! K팝은 빠르고 슬픈 멜로디에 모호하고 달콤한 말을 담아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음악이니까. 이젠 제발 누가 K팝이 왜 슬프냐고 다시 한번만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티아라의 〈넘버나인〉을 튼 다음 이 멜로디가, 이 가사가, 이 춤이 슬프지 않을 방도가 있냐고 되묻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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