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권택의 영화가 종종 그 자신의 인생경험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진실을 담아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임권택 자신의 얘기에 따르면,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후, 72년까지 4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73년 <잡초>를 자신이 직접 기획해서 만들기까지는 감독으로서의 자각 같은 것은 없었으며 프로듀서의 주문에 따라 갖가지 상업영화를 만들어왔을 따름이다. 물론 <잡초> 이전의 영화에서도 그의 고유한 세계를 찾아낼 수 있지만.
그의 82년작 <만다라>는 나와 임권택의 첫 만남을 가져온 영화이자, 내면적인 고뇌에서 발하는 빛을 포착하려는 새로운 흐름을 한국영화에 추가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묘미는, 이렇게 형이상학적 주제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무거운 의미를 띠는 영상이나 몽타주를 배제하면서 지극히 자연스런 연기와 화면으로 구성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임권택이 철저하게 현장에서 영화를 배우고, 그 속에서 즉물적인 영화를 중시하는 상업영화 세계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 희생하는 여성과 무능력한 남성을 그리는 <씨받이> 같은 작품은 여러모로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티켓> 또한 이같은 맥락에 있는데, 이는 한국 특유의 ‘한’이라는 정서와 관련을 맺는 것 같다. 어쩌면 미조구치를 일본문화 가운데 짙게 배어 있는 한국적인 요소의 대변자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감독이 추구한 주제는 비슷해 보인다. 또 무장봉기의 영웅담보다 최시형의 비폭력 저항사상을 부각시키고, 동학사상이 한반도에서 자발적으로 탄생한 민주주의 원리였다고 말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었던 <개벽>이나 현대사의 한 결정적 국면의 의미를 깊이 천착한 <태백산맥>은 모두 역사를 힘있게 영화로 옮긴 작품들이다.
그의 뛰어난 점은 한을 ‘예’(禮)로 승화시킨 데 있다. <서편제>와 <축제> <춘향뎐>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 자신의 ‘한’으로 말미암아 인간에 대한 증오를 키우기보다는, 자신의 영화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을 경애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한으로 인해 사람들을 한층 더 존경하게 되거나 가련하게 여기고, 마침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다각적으로 그들의 한의 실체를 보려 애써왔다. 그것이 바로 임권택에게 있어서의 ‘예’이며, 나를 한의 세계에 한발 다가서게 한 요소다.
사토 다다오, <한국영화와 임권택>(한국학술정보 펴냄, 고재운 옮김, 2000년)에서 발췌, 요약한 것임.
사토 다다오는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의 권위자이며, 후쿠오카영화제 디렉터, 일본영화학교 교장으로도 활약중인 일본의 영화평론가다.
▶ 임권택을 바라보는 다섯개의 시선
▶ 미셸 프로동의 특별기고
▶ <르몽드> 장 프랑수아 로제
▶ <리베라시옹> 필립 아주리
▶ 샤를 테송의 <춘향뎐>론
▶ 데이빗 제임스의 ‘임권택: 한국 영화와 불교’
▶ 사토 다다오의 ‘한국 영화와 임권택’
▶ 임권택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