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 나온 한 시사프로그램의 내용이 꽤 눈길을 끌었는데, 인간의 뇌 속에 있는 특정부위의 조건에 따라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가 나온다는 연구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일부분만의 과학적 분석 차이를 그러한 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원인 규명인 양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어린아이의 그림에 나타난 표현들이 앞서 말한 경향의 분석에 이용되는 것은 흥미로웠다. 남자아이는 움직이는 물체에 대하여 간결하고 차가운 색 계통을 써서 그리는 반면, 여성적 성향을 지닌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똑같이 정지된 물체를 화려한 색조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렇듯 그림을 통한 내면탐구는 아동심리나 정신병 연구에 주로 쓰이는데, 사람이 표현해내는 그림에 그 사람의 내면이 부지불식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ASIFA 1978년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성작가 수잔 피트의 <아스파라거스>(Asparagus, 국내에서는 제1회 전주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에서 상영된 바 있다)는 앞서 말한 여자아이의 그림 취향에 대한 이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 취향이 명확하다.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이며 세밀한 그림체와 붉은색 위주로 이루어진 배색의 향연은 남성 단편작가들에게서는 느끼기 힘든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이미지는 뭉크나 달리의 작품과 유사점을 보이긴 하지만 휠씬 폐쇄적인 환경에서 표현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구리 요지의 <기생충의 하룻밤>이나 이슈 파텔의 <파라다이스>를 연상시키지만 훨씬 더 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간혹 작품 소개 문구로 자주 쓰이는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와 더불어 뉴욕을 들끓게 한 에로틱 아트 애니메이션’이란 말에 현혹돼 <카이트>나 <메조포르테> 같은 영상을 기대하면서 이 작품을 찾는 이도 가끔씩 보이지만.
여성적 에로티시즘은 남성 취향과는 차이가 있다. <아스파라거스>의 대변을 누는 얼굴없는 여인,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미지로 상자 속에 갇혀 있는 방 안,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수많은 환영들, 작품 내내 등장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아스파라거스를 애무하는 신에서 나오는 주인공 여인의 정면 모습에는 눈과 코는 없이 입만 등장한다. 힘든 연주를 끝마치고 악기가 내는 음 하나하나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난해하고 불규칙적인 음악이 작품 전면에 흐르는 등 은유적 표현의 에로티즘이 흐르는 작품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이미지를 표현해내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최근 컴퓨터의 도입으로 자연에 있는 거의 모든 색에 대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16만 컬러’의 스팩을 자랑하며 가일층 쉬워진 상업애니메이션들의 제작환경에 비해 마치 예전 256컬러 시대의 게임을 보는 듯한 화면은 단순히 시간이나 돈이라는 말로는 메우기 힘든 부분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도 색채 지정을 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이제는 우리 애니메이션계에서도 좀더 주도적으로 제작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분야에 여성의 파워가 필요할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와 구성, 킬러의 옷은 ‘검은색’, 바다색은 ‘파란색’, 밤하늘은 ‘검은색’이라는 무서운 색감각만으로는 향후 100년이 갈 콘텐츠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