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로봇청소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구실이 생기자마자 샀던 것은 부직포를 붙여 쓰는 청소밀대였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내 손으로 연구실 구석구석을 쓸고 닦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이주일이 되고 이주일이 한달이 되고 한달이…. 그렇게 일년쯤 지난 후 난 청소할 생각을 접었다. 역시 바쁜 현대인은 기계의 도움이 필요해! 그렇게 로봇청소기를 주문했다.
기계가 나를 대신해서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게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연구실 문 앞에 도착한 박스를 보며 깨달았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된 사용설명서가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인터넷 검색으로 같은 제품을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고 대략적인 사용법을 익혔다. 별도로 구입한 전원 플러그를 연결하고 함께 온 여러 부품을 본체와 스테이션에 끼워넣었다. 연구실에 벽면 콘센트가 많지 않아 원래 있던 냉장고를 어정쩡하게 틀어놓고 나서야 스테이션이 놓일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앱을 다운받고 이것저것 눌러보며 청소를 하기 위한 기본 세팅을 마쳤다. 먼지를 흡입하고 걸레질 후 세척하는 기능도 있었으나 두개의 물통을 채우고 버리며 먼지통을 비우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왜 로봇청소기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하지 못할까? 박스를 열고 전원 스위치만 누르면 사용자에 최적화된 세팅을 스스로 하고 자신이 담겼던 박스까지 정리해서 버리는 기계, 스테이션이나 물통 없이 배터리 충전부터 물통 관리까지 다 알아서 하는 기계, 청소 시작 전 내가 의자나 바닥에 내려진 물건을 치우지 않아도 스스로 처리하고 청소 후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기계. 청소하는 로봇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투덜거리며 내가 원하는 로봇청소기를 떠올리다가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인간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청소로봇이 인간을 닮아야 한다면 ‘어떤 인간’을 닮게 될까?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앤드류라는 이름의 가사도우미 역할을 했던 이는 당시 중년 남성이었던 로빈 윌리엄스였다. 가사도우미의 절대 다수가 중년 여성인 현실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로봇청소기는 건조기, 식기세척기와 함께 이미 “이모님”으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일본 인공지능학회는 2014년 학회지 표지에 등에는 케이블이 연결되고 손에는 빗자루를 든 여성의 이미지를 실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하나로 묶은 긴 머리에 허리가 잘록한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의 모습을 한 청소로봇이라니,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지금의 로봇청소기가 좋다. 어떤 인간도 떠올릴 수 없게 하는 넓적한 원반 모양이 특히 마음에 든다. 뽈뽈거리며 연구실 바닥을 청소하는 넓적한 원반을 바라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결코 귀여운 인간처럼 생긴 로봇청소기를 원치는 않는다. 어떤 기계는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다고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