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존하라는 법은 없다. 건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사람이 건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재개발/재건축이 원형 보존보다 공익에 부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건물이 무엇인지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움직일 수 있다. 원주시가 허물려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세워져 현재까지 원형을 간직한 건축물이다. 오래 공존했던 원주 시내 다른 단관 극장들이 사라지고 홀로 남았다.
원주시가 전임 집행부의 복원 계획을 뒤집고 철거로 방향을 틀자,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보존론과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으로 바꿔보자는 철거론이 맞섰다. 양쪽 모두 자신의 방안이 인근 시장을 살리는 것이라 주장한다. 원주시의회는 이 문제로 연신 파행을 겪다가 희한한 중간 결과를 내놨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는 다음 회기로 넘어가 철거 집행이 지연되었지만, 철거 계획을 담은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안’은 표결에서 간발의 차이로 통과되었다. ‘계산’만 미룬 채 ‘주문’을 질러버린 꼴이다.
분명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쥔 논쟁이 있었다. ‘극장을 계속 운영하면 연간 유지관리비에 10억원이 들어간다’, ‘안전등급 D인 건물이고 리모델링하면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어진다’는 철거론자들의 지적에, 보존론자들은 ’아카데미극장보다 면적이 훨씬 더 큰 문화시설도 유지관리비가 연간 1억원이었다’, ‘리모델링 비용으로 국비 15억원과 도비 4억5천만원이 확보되었다’, ‘보강하면 안전등급이 C로 올라가며, 리모델링한 시설도 등록문화재가 된 전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 이후 더이상의 진전도 인내도 없이, 원주시와 시의회 다수파는 힘으로만 철거를 추진했다.
그 사이사이 아예 토론의 기반을 뭉개는 움직임도 나왔다. 원주시의회 어느 의원, “문화는 집에서 해도 된다”. 집에서 할 수 없는 문화도 있기에 극장도 전통시장도 의회도 있는 것이다. 모 청년상인단체, “이러한 막대한 세금을 취업의 문이 막혀 있는 어려운 청년에게 돌려줘야 한다”. 어떤 철거 찬성 단체는 명칭부터가 ‘세금바르게쓰기실천행동본부’다. 이런 식으로 예산 싸움을 붙이자면 끝이 없다. 다른 누군가가 “청년 지원 말고 빈곤 계층에 집중하자”, “주차장, 야외공연장 조성하지 말고 부지를 매각해 재정에 보태자”는 식으로 나온다면?
누가 최악의 분열을 막아내고, 원주를 매력적인 지역으로 만들 것인가. 보존론자들은 지역 내외에서 광범위한 시민 연대를 조직해왔다. 철거론자들은 보존 방침을 급박하고 일방적으로 엎은 원주시에 마냥 기댈 것인가. 내가 철거론자고 논리적 자신이 있다면, 원주시 주민참여 등에 관한 조례 제11조에 따라 ‘시정정책토론’을 청구할 것이다. 보존론자들이 도전했지만 원주시가 막아섰던 바로 그 길이다. 원주시가 하지 않겠다면 원주시의회가 나서서, 예산안 처리 전에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은 극장이 아니다. 그 밑바탕의 공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