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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피기', 동물적 신체와 오염된 여성의 형상을 냅다 겹치기
이보라 2023-04-26

죽은 돼지들의 머리, 기다란 창자, 토막 난 고깃덩이들. <피기>는 정육점의 일과를 짧고 굵게 보여주며 시작한다. 영화의 주요 테마인 ‘비인간적’ 신체를 전면적으로 전개하는 오프닝이다. 그 뒤로 누군가의 손, 두발, 입술을 비춘 근접숏이 차례로 나열된다. 이 몸의 주인은 사라(라우라 갈란). 부모의 정육점 일을 돕는 그녀는 과체중이라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극심한 놀림을 받지만,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작은 위안을 얻곤 한다. 어느 오후, 모욕적인 사태의 연쇄로 비참함에 잠겨 있던 사라는, 이후 자신을 따돌리던 이들이 한 남성에게 납치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사라는 그날의 진실을 숨기기로 한다. 심지어 그녀는 납치범에게 오묘한 욕망을 품기까지 한다.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문제를 범죄 스릴러 장르에 접속한 <피기>는 무거운 여성에게 부과되는 억압과 폭력을 여실하게 노출한다. 피, 땀, 오줌 등 다양한 ‘오물’이 등장해 사라의 동물성을 부각하며, 여름의 후텁지근한 계절감 또한 이 심상을 더욱 물질화한다. 오염된 여성의 형상을 밀어붙이는 기세가 돋보이는 한편, 결론에 이르기 위해 인물을 매번 지독한 곤경에 빠뜨리려는 태도는 기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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