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란 세상의 이치나 도리를 뜻한다. 으레 지켜져야 할 도리 없는 세계에 내몰린 청소년들이 과거나 현재나 어디나 있다. ‘나’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방관하는 어머니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감행한다. 가정 밖 세계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뒷골목과 모텔촌을 전전하며 무리 지어 다닌다. 단속을 피해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고 무료급식소를 찾아 배를 채우는 한편, 과감히 소매치기하거나 주점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번다. 때로는 미성년자 성매매를 시도하는 어른을 골라 협박하는가 하면, 달리는 자동차에 일부러 접근해서 자해 공갈로 돈을 버는 위험한 짓도 한다. 언젠가 BMW를 사서 몰고 다니는 멋진 어른이 되리라 꿈을 꾸지만, 대체로 계산 없이 충동적으로 현재만을 위해 거칠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미래가 없고, 따라서 성장도 불가능한 세계에서 계속 만족스럽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 노숙자가 구해준 방에서 가출 청소년들과 살던 나는 우연히 경우를 만난다. 경우가 내 눈길을 끈 까닭은, 드물게 다정함을 지닌 친구여서다. 경우는 동생들의 손톱을 깎아줄 줄 알고, 이가 아픈 나를 데리고 치과로 갈 줄 안다. 언젠가는 헤어진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는 꿈을 품고 성실하게 식당에서 일하며, 내게도 친절을 베푼다. 이렇게 마음이 넓은 경우가 좋고 부러운 마음, 한편으로는 밀어내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느끼며 갈등하는 나의 모습은 여전히 외롭고 어린 청소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부모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해 언젠가 부모의 집에 몰래 찾아가나, 자식을 전혀 그리워하지 않는 모습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몸은 자랐어도 여전히 온기를 그리워하는 어린 청소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성인이 그리움과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방법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를 돕는 일일까. <경우 없는 세계>는 아이를 품을 줄 아는 어른이 거의 없는 쓸쓸한 세계에서, 타인을 도울 줄 아는 사람들이 드물게 나타나서 다정함을 전하는 기적을 그려낸다.
249쪽“나는 나이를 먹어도 지혜나 연륜 같은 건 터득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아득함만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