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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의 연인에게', 조각나버린 세계 앞에서 무력해진 개인들
소은성 2023-03-29

1990년대 중반 독일의 어느 도시에서 아슬리(카난 키르)와 사이드(로저 아자르)는 만난다. 각각 튀르키예와 레바논 출신의 유학생인 두 사람은 파티에서 마주쳐 연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아슬리의 어머니는 사이드가 아랍계라는 사실만으로 결혼은 물론 교제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에 갈등하던 두 사람은 결국 아슬리의 가족에게는 비밀로 부치고 둘만의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사이드의 행동이 비밀스러워지는 것은 그때부터다. 그는 아슬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드가 갑작스럽게 예멘으로 떠나버렸을 때, 아슬리가 취한 행동은 그의 요구대로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었다.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이 말했듯, 이 영화가 사랑에 관한 무언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사랑에는 한국어 제목 ‘나의 연인에게’가 암시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말들이 필요해 보인다. 여기에는 세기의 전환기를 함께했던 끝나지 않는 파국의 이미지와 그것을 둘러싼 무력감, 혹은 맹목적인 (아마도 다가올 것으로 믿었던 어떤 미래를 위한) 자기부정의 이미지들이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들은 영화에서 아슬리가 겪어야 했던 사랑에 수반된 감정이면서, 동시에 그 사랑의 파국과 함께 찾아온 세계의 파국을 비로소 알게 됐을 우리의 감정을 지시한다. 영화의 원제가 뜻하는 ‘세계는 어떤 다른 것이 될 것이다’가 가리키듯,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세계의 한 가지 기원에 놓인 이 사랑은 그러므로 조각나버린 세계 앞에서 무력해진 개인들의 알레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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