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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①, “다리가 세개뿐인 의자는 스즈메의 결핍을 표현한 것”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3-03-17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 <너의 이름은.>은 혜성 충돌을, <날씨의 아이>는 홍수를, <스즈메의 문단속>은 지진을 다루며 ‘재난 3부작’을 완성했다. 세 작품 모두 ‘재난’과 ‘해결자’라는 공통 소재를 갖는데, <스즈메의 문단속>만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 이전 두 작품과 <스즈메의 문단속>의 결정적 차이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실제 재난을 다뤘다는 점이다. 제작 초반까지만 해도 잔존하는 슬픔과 상처를 영화로 다뤄도 될지, 또 일본 관객이 이를 허용해줄지 의문이 들고 불안했다. 무엇보다 시대적·세대적 트라우마를 남긴 큰 재해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대지진이 일어나고 12년이 지난 지금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았다. 큰 결심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했다.

- 영화는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규슈 지방에서 출발하여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이와테현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담겨 있다. 이 방향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 2011년 도호쿠 지역에 지진이 발생하고 나서 실제 서쪽으로 이사 간 사람이 많았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멜트다운되며 아예 쓸 수 없게 된 땅도 생겨났고 쓰나미로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스즈메(하라 나노카)처럼 서쪽 지역에 자리한 친척 집에 머물거나 정부가 제공한 집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실향의 아픔을 되짚어나가고자 규슈에서 출발해 많은 이의 상처와 슬픔, 사연이 담긴 동쪽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그리려 했다.

- 가상의 재난을 그리던 것과 달리 실제 사건을 기반한 과정에 무엇을 가장 신경 썼나.

= 당시 고향을 잃은 분들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그들이 상처받지 않는 방식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래서 쓰나미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일절 넣지 않았고,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순간도 스즈메의 일기장 속 음성같이 청각적으로만 표현하려 했다. 판타지 장르로서 요석이나 문을 닫는 사람(토지시) 같은 영화적 장치가 있지만 스즈메의 경험과 감정은 그 자체로 진실되게 보여주려 했다. 이 현실적인 감정은 스즈메의 모험이 시작돼야만 하는 당위성을 납득시킬 중요한 배경이면서 관객이 재해를 직접 겪지 않더라도 영화의 의미와 재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 영화엔 고도 차를 드러낸 앵글이 자주 등장한다.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버드뷰(bird-view)는 영화에서 어떤 기능을 하나.

= 이번 작품은 여러 테마를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땅, 지면, 풍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일본은 흔들리는 땅 위에 살고 있어 기본적으로 지진을 중요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앵글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마지막 문에서 스즈메가 끝없이 떨어질 때, 그런 고도의 낙차를 드러내는 게 이 영화의 맹점이었다. 하늘로 올라서 솟구치는 느낌보다는 땅으로 떨어지며 지면을 조명하는 게 중요했다.

- 영화는 전반적으로 로드 무비 형식을 띤다. 스즈메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치카(하나세 고토네)와 루미(이토 사이리), 세리자와(가미키 류노스케)까지 인연을 맺는다. 특히 치카와 루미는 사랑했던 공간이 폐허가 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밝고 낙천적인 태도를 지녔다.

= 상처를 간직한 스즈메가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을 만나길 바랐다.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스즈메는 재해의 피해자다. 치카와 루미는 동일본 대지진이 아닌, 각기 다른 재해의 피해자지만 어두운 시간을 빠져나와 회복에 이른 상태다. 어떤 의미에선 스즈메의 미래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주해도 언젠간 회복하고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뜻한다. 스즈메가 이들의 밝은 일상을 함께하며 조금씩 나아가고 성장해가는 구조로 구현하려 했다.

- 소타(마쓰무라 호쿠토)의 히스토리가 무척 독특하다. 그는 미미즈(재앙을 부르는 힘)를 막아내는 히어로지만 동시에 교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한다. 예외적인 평범성이 눈에 띄는데.

= 소타는 미지의 세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소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을 보인다. 먼저 미미즈를 막아내는 토지시로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의 뒷면을 잘 알고 있고, 동시에 미성년자인 스즈메가 모르는 어른의 사회를 이미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다. 스즈메에게 물음표로 남아 있는 두 양면을 잘 아는 사람으로 그리려다 보니 지금의 설정이 완성됐다.

- 그런 소타는 다리가 세개뿐인 의자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다. 일종의 결핍이나 장애를 상징하는 것일까.

= 소타를 의자로 치환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소타가 원래 모습 그대로 있었다면 그냥 주인공 옆에 붙어다니는 꽃미남으로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건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소녀와 미남이 있으면 으레 흔한 러브 스토리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번 작품에 로맨스적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픔을 디딘 주인공의 성장이었다. 그래서 스즈메와 함께 모험을 떠난 파트너의 성별을 부각하지 않기 위해 의자로 설정했고, 세개의 다리는 소타가 아닌 스즈메의 결핍을 드러낸다. 어릴 때 재해를 경험한 스즈메가 소타에게 “죽는 건 두렵지 않아!”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이 말은 큰 것을 잃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쓰나미로 인해 바다에 떠내려갔다가 다리 하나가 부서진 채 돌아온 의자는 결국 스즈메의 결락을 상징하고 마음속에 남은 상처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의자가 의외로 굉장히 신나게 뛰어다니고 쾌활해 보인다. 그것을 통해 스즈메는 의자처럼 강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은연중 느끼면서 액션과 모험을 자유롭게 펼쳐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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