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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케이트 블란쳇 배우론: 누가 케이트 블란쳇을 두려워하랴
김소미 2023-02-23

'TAR 타르'와 케이트 블란쳇의 서늘한 정점

<캐롤>(2015)의 신화에서 사뿐히 걸어 내려온 케이트 블란쳇은, 재치 있는 필모그래피로 숨 고른 지난 몇년간 아껴둔 전원이 일시에 합선된 듯 <TAR 타르>에서 강력한 불꽃을 틔운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2022) 속 스피자투라의 자격을 얻어 녹음실에서 시종 원숭이 소리만 내도 즐거워하는 그의 ‘천생 배우’ 기질이 관객의 얼굴에 드리운 웃음기는 <TAR 타르>의 무시무시한 포식자 앞에서 일시에 사그라든다.

흠 없는 연기, 완벽한 픽션

리디아 타르는 누구인가? <TAR 타르>는 질문하게 만든다. 그는 혹시 로만 폴란스키 하비 와인스틴인가? 혹은 조금 더 미묘한 케이스의 남성 지배자들? 아니라면,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은 반드시 양자경의 것이리라 믿고 있던 이들조차 갑자기 혼돈에 빠트리는 케이트 블란쳇의 흠 없는 연기가 빚어낸 영화적 초상일 뿐일까. <TAR 타르>는 리디아 타르의 사생활에 관한 픽션으로서 완벽한 영화이고, 현실의 여러 초상을 종합적으로 은유하는 영화로서 극도로 논쟁적인 영화다. 어떤 쪽이든 토드 필드와 케이트 블란쳇의 합작인 이 신작은 매우 격렬하고 정교하다.

여성 지휘자의 신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연구차 아마존에서 수년간 거주하며 음악인으로서 진정성마저 인정받은 리디아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상임 여성 지휘자로 임명되어 불세출의 나날을 보낸다. 약간 버석하고 핏기 없는 피부에 어깨 위로 가지런히 모인 단발, 남성복 디자인의 맞춤형 슈트를 입은 그는 말하자면 구시대의 뛰어난 산물이 되려 한다. 리디아 타르가 점령한 숭고하고 괴팍한 예술가의 이미지는 더이상 그 신비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힘들뿐더러 그 스스로 과거 명지휘자들의 음반 커버를 모방하는 식으로 자기 재현에 힘쓴다는 점에서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케이트 블란쳇은 자기 인물의 허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처럼 연기한다. 리디아가 젊은 조수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를 방패 삼아 속물적 욕망을 착실히 구현해나갈 때, 관객에게 그의 실체를 누설하는 건 블란쳇의 몸이다. 무대 위로 걸어나가기 직전 양 어깨를 한번씩 손으로 털고 코를 스치는 리디아 특유의 의식은, 그 간단한 동작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자신만만함, 불안정함, 흥분, 회피의 동작으로 변모하고 마는지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거울 앞에서 악보를 읽다 말고 자기 자신을 피사체로 의식하는 눈빛, 객석에선 알아차릴 수 없는 각도에서 경망스럽게 까딱거리는 손가락, 남을 이용하고 변명할 때 짓는 뻔뻔한 표정 모두 오직 블란쳇과 카메라 사이에 결속된 세밀한 표현들이다.

배우가 엄청나게 카리스마틱한 인물을 연기할 때의 함정은 동일시에 실패한 관객의 심리적 거리감에 있다. 게다가 리디아 타르가 대변하는 자아도취적 포식자에게 현실에서 질릴 대로 질려버린 현대의 젊은 관객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10대 시절 호주 연극 무대에서 일찍이 주목받았던 케이트 블란쳇은 손가락이나 입모양 같은 작은 신체적 움직임까지 정확하고 수려하게 구사해내는 전통적인 무대 배우다. 이런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찬사이자 오명이 ‘테크니션’이라는 호칭일 것이다. 케이트 블란쳇보다 한 세대 앞선 배우 중에는 메릴 스트립이 대표적이다. (잡담, 메릴 스트립에게 마치 머릿속에서 째깍이는 시계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기계적인 연기를 한다며 비판했던 은막의 스타 캐서린 헵번 또한 실은 비슷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동족 혐오를 한 것이 아닌가, 어디까지나 망상해본다. 케이트 블란쳇이 <에비에이터>(2004)에서 캐서린 헵번을 연기하고,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기를 꿈꿔온 스트립과 블란쳇이 <돈 룩 업>에서 만난 것은 그래서 이들 배우의 팬들에겐 개기일식 같은 사건이다.) 배우의 연기가 미니멀한 장면을 채우는 가장 중요한 미장센인 <커피와 담배>, 직접적으로 실존 인물을 모사하는 동시에 현대적 판타지를 더해 재해석하는 <아임 낫 데어>(밥 딜런)와 <에비에이터>(캐서린 헵번)는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 기술이 적소에 쓰인 좋은 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소박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의 반대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TAR 타르>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두개의 심리적 무대ꠓ교향악단의 공연장과 오래된 아파트- 위에 갇힌 채 다분히 심리극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연기를 최대치로 해낸다.

그렇게 거장이 된다

리디아 타르만이 아니라 케이트 블란쳇도 포식의 배우다. 필모그래피의 왕성함에 있어 케이트 블란쳇처럼 극단의 역할을 가뿐히 수집하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에서 엘프 여왕 갈라드리엘을, <토르: 라그나로크>(2017)에서 헬라를 연기한 그는 블록버스터 브랜드들과 협력하면서 선악의 스펙트럼을 극단적으로 가로질렀다. 호주 출신 연극 배우를 단숨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성하게 한 출세작 <엘리자베스>(1998)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약 10년 후 <골든 에이지>(2007)를 통해 세월을 거치며 같은 인물을 해석하는 깊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왕과 신, 전설적 배우와 가수 역할에 꾸준히 발탁되어온 배우가 <TAR 타르>에 이르러 입지전적인 지휘자를 연기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그다지 놀랍지 않다. 오히려 흥미로운 지점은, <TAR 타르>가 남기는 일말의 모호함과 복잡성이 배우의 커리어 안에서도 유의미한 변주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적 여성, 레즈비언일 뿐 아니라 남성 예술가들의 전형적인 어둠까지 함께 끌어안은 인물을 연기하면서, 케이트 블란쳇은 그 인물의 필연적인 혼돈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이제 여성 캐릭터의 지위와 카리스마를 높인 공로로 블란쳇에게 주어졌던 지난날의 찬사는 어딘가 손쉬운 말로 들리기까지 한다. 미투 운동과 캔슬 컬처의 소용돌이 서사에 뛰어든 배우이자 기획자, 필모그래피의 지휘자인 케이트 블란쳇은 이토록 어렵고도 중요한 초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그런 예술가를 거장이라고 부른다.

케이트 블란쳇에 반응한 배우들

케이트 블란쳇의 기둥이 굳건한 덕분에 <TAR 타르>에서는 상대적으로 분량이 협소하고 세밀한 묘사가 주어지지 않는 주변인물들조차 적재적소에서 탄력을 받아 자기 가시를 뾰족하게 드러낸다. 스승의 탐욕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프란체스카의 실망과 모욕감, 그리고 연인의 욕망을 언제나 한발 앞서 간파하고 최대한 묵묵히 감내하려는 샤론(니나 호스)의 고통은 리디아 타르의 컴컴한 어둠 앞에서 유달리 맑고 표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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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