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 19살 무렵 우연히 찾은 극장에서 <화양연화>를 보았다. 소설가를 지망하던 내가 영화 매체의 매력에 처음 매료된 순간이었다. 당시 무지한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나는 <씨네21>을 통해 더듬더듬 영화를 만졌다. 그 후로 영화를 하겠다고 또래 친구들을 모아 ‘돌고래유괴단’을 조직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결국 팀을 유지하기 위해 광고를 시작했고, 틈틈이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현재에 이르러 그토록 염원하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느낀 바가 크다. 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씨네21>에서 영화가 아닌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인터뷰를 하게 됐다. 감회가 새롭다.
- <Ditto>와 <OMG> 뮤직비디오가 한국 유튜브는 물론 중동 지역과 일본, 남미, 북미 지역 인기 동영상 순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정도의 흥행을 예상했나.
= 마침 오늘 <Ditto>가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뉴진스는 아직 해외에서 별도의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은 신인이기에 이렇게까지 멀리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Ditto>의 뮤직비디오는 특별히 해외를 타깃으로 만들지도 않았고, 그저 좋은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업했는데 해외 각국의 팬들이 공감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각국 유튜브 랭킹 1위를 차지하는 등 <OMG> 뮤직비디오의 반응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는 해외의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에서 <OMG>를 본 사람들이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 광고계, 혹은 게임 광고계에 진입했을 때 신 바깥의 이방인을 자처했고, 그렇기에 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는 의견 또한 피력해왔다. K팝 뮤직비디오 바깥의 사람으로서 뮤직비디오 제작 환경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인가.
= 사실 뮤직비디오야말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매체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정작 나오는 작품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큰 아쉬움을 느꼈다. 수많은 뮤직비디오들이 같은 문법으로 복제품처럼 양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뮤직비디오 신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모르는 이유와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민희진 어도어 대표에게 아이돌 뮤직비디오 제작을 제안받고 고민이 많았다. 신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이방인으로서 우리가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다. 특히 제안을 해준 민희진 대표에 대한 믿음이 컸다. 그동안 이 신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온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고, 뉴진스의 이전 뮤직비디오에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창작자에 대한 존중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느껴 제작을 결심했다. 그 후로 아이돌의 기존 뮤직비디오들을 찾아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카메라가 그들의 얼굴과 몸을 전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 보여지는 그들의 잘 닦인 미소가 일견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굳어진 틀이 관객이 원하는 것이라고 제작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 반대로 가보고 싶었다.
- <OMG> 공개 이후 나온 일부 반응은 기획 의도이기도 했던 ‘아이돌에 대한 외부의 곡해된 시선, 변질된 의미화’에 해당한다. 때문에 뮤직비디오 신의 이방인으로서 느낀 바를 녹여낸 <OMG>가 더 파급력을 얻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 <OMG> 공개 이후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제작을 앞두고 민희진 대표와 뉴진스 멤버들을 만났다. 그들이 가진 순수한 의도와 자유로운 표현이 곡해되고 훼손되지 않았으면 했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악플과 끔찍한 메시지가 쏟아지는지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면 정말 참혹한 광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에게는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역할과 책임이 있다. 물론 이는 아이돌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구성원과 이를 사랑하는 팬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 예컨대 ‘브롤스타즈’ 광고에서 배우 이병헌을 둘러싼 다양한 밈이 등장했던 것처럼 모델의 현실적인 맥락을 영상 안에 끌어오는 작업 방식이 유명하다. <OMG>에 이말년을 출연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 이말년 작가는 침착맨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기에 앞서 자신만의 화풍과 내러티브로 개성 있는 작품을 내놓은 만화가다. 그의 작품은 뛰어난 상상력을 기반으로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의 캐릭터가 멤버들의 상상을 편견 없이 들여다봐주는 어른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 <OMG>는 외국인 멤버 하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하필 긴 대사를 외국인 멤버가 소화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 극중에서 하니가 아이폰이라고 주장하는 내레이션이었지만, 사실 한 글자만 바꿔보면 대중이 들이대는 잣대에 맞추어 수동적으로 변해버린 아이돌의 이야기다. 한국어가 자신의 언어가 아닌 하니가 내레이션을 한다면 메시지 전달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 <OMG>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대중적 인기와 화제의 중심에 있는 아이돌이지만, 사실 현실적으로는 어린 10대 청소년들에 불과하다. 작금의 아이돌 문화가 이들의 삶과 성장에 어떠한 제약을 두는지, 나아가서 아이돌로 표상되는 청소년들의 미래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표현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 이런 해석을 어떻게 생각하나.
= K팝은 어느새 국제적으로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아이돌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보이겠지만 그 안에는 한 인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이 비단 아이돌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입맛대로 재단하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도 이번 작업을 하며 아이돌 팬덤 문화의 긍정적인 부분도 많이 보았다. 높은 수준의 작품 해석과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태도 등 팬덤 문화가 굉장히 성숙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놓은 작품에 대해 활발한 해석과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연출자로서 매우 기쁜 일이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라는 아트폼과 비평적 태도에 많은 의문이 들었다. 뮤직비디오는 작품인가? 상품인가? 감독의 역할은 무엇인가? 뮤직비디오를 작품으로 보지 않는다면 음악을 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OMG> 하니의 내레이션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어요.
남들이 이야기하는 나와 진짜 내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겨우 그 답을 찾았어요.
사실 저는 아이폰이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당신이 부르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갈 거예요.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고,
당신을 위해 말하고,
당신을 위해 노래할 거예요.
당신이 제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 머릿속은 항상 이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그동안 제가 고민했던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