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태 감독의 손에 <대외비> 각본이 처음 쥐어진 건 전작 <악인전> 촬영에 막 돌입했을 무렵이었다. “작품 제안을 받은 건 아니었고 초고를 쓴 이수진 작가의 글을 봐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읽어보니 재밌게 잘 쓴 글이라 트윈필름의 대표에게 소개해줬다.” 2019년 <악인전>이 칸영화제에 초청받아 출국해 있을 때였다. “호텔에서 쉬며 다음 영화는 뭘 찍으면 좋을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그 각본이 떠오르더라. 권력, 돈, 배신과 같은 인간의 욕망을 시대적 병폐와 엮어 논한다면 내가 잘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뒤로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 <대외비>는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국회의원 후보 전해웅(조진웅)이 선거를 준비하면서 지역 실세인 권순태(이성민)와 폭력조직 두목 김필도(김무열)와 관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히 해웅의 욕망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에 관한 서사로 이야기가 확장된다”고 이원태 감독은 덧붙였다. 로케이션은 전부 부산에서 찾으려 했지만 이미 개발된 지역이 많은 탓에 1990년대 시대상을 드러낼 곳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부산 외 동해 묵호동부터 거제도, 여수, 충청도까지 돌며 장소를 살폈다. “다만 극의 중요한 공간인 해웅의 집은 꼭 부산에서 찾고 싶었다. 고생 끝에 앞마당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좋은 공간을 발견했다.” 바로 이 집에서 해웅은 국회의원 당선의 꿈을 꾼다. 권해웅은 배우 조진웅이 연기한다.
“동네 청년 이장 같은 사람 좋은 얼굴을 지닌 한편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40대의 위기감까지 잘 드러낼 수 있는 배우였다.” 김필도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게 눈에 드러나는 악”이다. 필도를 연기하기 위해 김무열 배우는 10kg을 증량했으며 부산 사투리를 완벽히 구사하기 위해 개인 레슨까지 따로 받았다고. 반면 권순태는 “겉으로 보기엔 나라를 위하는 점잖은 기성세대 같지만 실제론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숨은 권력자”로 그려진다. “김필도와 권순태를 통해 더 무서운 악은 과연 누구인지 논해보고 싶었다.” 권순태 역에 이성민 배우까지 합세한 뒤 이원태 감독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세 배우의 이미지와 연기의 질감이 다 달라서 재밌었다. 이들이 연기하는 전해웅과 권순태, 김필도의 입장도 전부 다르다. 그런 셋이 얽히며 사건이 발생하고, 이것이 또 다른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각자의 입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을 잘 담아보고자 했다.”
이원태 감독이 꼽은 <대외비>의 이 장면
“영화 후반부에 전해웅과 권순태 둘이 국밥집에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신이 있다. 각자 치열하게 달려온 두 사람이 독대했고, <대외비>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긴 장면이라 각색 단계에서부터 손에 오랫동안 쥐고 있었다. 내용 면에서도 그렇지만 이성민, 조진웅의 연기 또한 대단했다. 연기의 끝을 본 느낌이랄까. 당시 스탭들이 숨도 크게 못 쉴 정도였다. 이 신 하나만으로도 영화에 관해 자랑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이원태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