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10일 KBS1 <생방송 심야토론>(이하 <심야토론>)의 클로징을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월드컵 얘기가 한창이던 시절, 잠시 채널을 돌리다가 <심야토론>을 보게 되었다. 거의 끝나갈 때쯤이었다. <심야토론>이 막을 내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었다. 진행을 맡은 정세진 아나운서가 울먹거리는 것 같았다. 없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없어지는 것은 더 이상했다.
며칠 후 국회방송에서 하는 <정관용의 정책토론>에 나갈 일이 있었다. <심야토론>의 오랜 상징적 진행자였던 정관용도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정말로 소리 소문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에서 토론 방송의 전성기는 <심야토론>이 생긴 1987년이 아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었던 것 같다. SBS에도 토론 방송이 있었다. 당시 MBC에서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100분 토론>까지, 그야말로 토론 방송의 전성기였다. 동시에 세 군데에서 연락이 오면 대답하기가 참 곤란했었다. 방송에서는 그 시절이 토론의 전성기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시절이 토론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대변인을 비롯한 당의 주요 보직은 물론, 정치 신인 등용에 토론 배틀 형식이 적극 활용되었다.
KBS에 물어보니 외압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시청률이 너무 나오지 않아서 교양 방송 전체에 대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심야토론>이 먼저 없어진 것이란다. <100분 토론>과 <심야토론>의 가장 큰 차이는 교양국과 보도국이라는 제작 주체에 있다. MBC는 뉴스를 만드는 기자들이 그 연장선에서 토론 방송을 만든다. 반면 KBS는 탐사 방송과 다큐를 만드는 피디들이 그 활동의 연장선에서 토론 방송을 꾸린다. 그게 그거인 거 같지만 예산 할당에서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같았으면 방송 외압이라고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구매체, 즉 TV나 영화 등이 어려워진 시기에 벌어진 예산 배정의 문제라서 그렇게까지 사회적 위협으로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장사가 안되는데, 어쩔 겨?” 이런 문제가 되었다. 줄어드는 시청률에서 누가 잠시라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것인가, 그런 포맷 논쟁 같은 게 되었다.
플라톤이 쓴 <파이돈>은 기본적으로 논쟁집이다. 식구들을 위해서 도망치라는 말에 소크라테스가 그럴 수 없다고 논박하는 내용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절대 진리인 로고스의 등장, 철학의 출발 등 소크라테스 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논쟁 구조다. 소크라테스만 그런 것도 아니다. 공자 얘기의 상당 부분도 제자와의 토론 과정을 통해서 서술되었다. 그들만 그럴까? 부처의 얘기 중에는 싸움을 좋아하는 귀신인 아수라와의 논쟁도 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지식은 논쟁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부디 개편된 포맷으로 <심야토론>이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