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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메모리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환영의 안쪽을 가장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영화”
김예솔비 2023-01-05

- 정글을 떠난 당신의 첫 번째 영화다. 습하고 더운 열대우림을 떠나 고지대로 향했다. 타지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나.

= 무척 멋진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알지 못했고, 보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가 스스로를 낯선 곳, 낯선 문화 속으로 던져넣을 때라고 생각했다. 사실 낯선 것과 대면하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있어 꽤나 무서운 일이다. 진정성에 대한 많은 도전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꼈다. 나는 위대한 영화감독처럼 스스로를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무언가를 만들 뿐인데, 이것은 사실 실패하기 위한 도전에 가깝다. 어떤 것에 실패하고, 그 실패로부터 독특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자 했다.

- <메모리아>는 폭발성 머리 증후군이라는 당신의 사적인 질병으로부터 출발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질병의 감각을 어떻게 영화로 옮겨오고자 했나.

= 그것은 단순한 신체의 증상이나 징후일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 징후는 그 이상의 것을 말해준다. 징후는 환영적인 동시에 매우 유기체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비추느냐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의 삶은 실제로 매우 환영적이다. 모든 사람들, 모든 세계는 우리의 생각이나 이미지가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메모리아>가 한 사람이 가진 환영의 안쪽을 가장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 제시카가 자신이 들었던 ‘쿵’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젊은 에르난을 찾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기억이 가진 내용을 보여주기보다는 기억으로부터 뻗어나오는 어떠한 힘을 드러내려는 것 같다.

= 나는 그 장면에 이르러 영화의 시간이 팽창한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 영화의 호흡은 (나의 기준에서는) 꽤나 빠르게 진행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영화는 잠시 멈춰 서서 어떤 것을 매우 깊고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집중하고, 거기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낸다. 내게는 이 장면이 영화가 시간 자체를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하는 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유로워진 영화는 관객을 향해 말한다. “우리는 영화를 편집하고 있어. 이것은 믹싱룸이고, 이것은 환영을 만들어내는 기계의 일부야.” 그러므로 이제 영화가 스스로의 비밀을, 자기 자신의 내밀한 장치적 역학을 드러낸다. 나는 이것이 바로 <메모리아>의 심장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 ‘쿵’ 소리의 제작 비화에 대해 좀더 묻고 싶다. 19세기 후반에 최초로 녹음된 소리들을 쌓아올린 것이라고 들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고고학적인 작업처럼 보인다.

= 영화의 후반부에 사운드 디자인 실험의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 있다. 나의 사운드 디자이너가 최초로 녹음된 소리, 정확히 말하자면 프랑스 노래를 소개해주었다. 그 노래를 비롯한 아주 많은 소리를 중첩시켜 인류가 가진 모든 청취의 기억들을 반영하고자 했다. 한편 그 장면에는 노래 외에도 현장에서 수집한 다양한 소리의 재료들이 섞여 있었다. 배우들이 내는 소리, 영화를 만들 때 혹은 그 이후에 녹음된 소리, 촬영이 끝난 뒤 틸다(스윈튼)가 녹음한 소리 등.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시간의 혼재를 가리킨다.

-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강렬했던 것은 ‘쿵’ 소리의 압도감이었지만 두 번째로 보았을 때는 ‘쿵’ 소리 이후의 공허함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공허함이 기억을 수집하는 제시카의 능력과 관련된 것일까.

= 그렇게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비어짐은 다른 이의 기억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듣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의 상태다. 우리는 언제나 나 자신과 나의 집, 나의 건강,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으로 생각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향하는 생각의 힘을 잠시 내려놓으면 비로소 다른 이, 더 나아가서는 다른 종과 연결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러한 감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

- ‘쿵’ 소리는 콜롬비아 지역의 지진, 그리고 잦은 게릴라 전투로 인한 트라우마와도 연관이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배경을 서사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넌지시 암시한다.

=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콜롬비아에 대해 폭력과 마약, 군사적 무력 충돌을 쉽사리 떠올린다. 그래서 영화에 굳이 이러한 내용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콜룸비아의 정치적 상황은 이미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콜롬비아에 머물며 거리를 걸어다닐 때,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인류의 기억들이 내게는 소리로 다가왔다. 설명할 수 없는 소리들. 총성일 수도, 폭발음일 수도 있는 소리들. 이 소리들은 이미 불안정한 공포의 감각을 자아내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몹시 불안할 때 커다란 소리는 여러 가지 상상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늙은 에르난이 눈을 뜨고 자는 장면은 영화 자체가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가 정지되는 순간, 객석과 스크린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 이러한 순간들은 당신의 영화에서 중요해 보인다.

= 그것은 사운드와 이미지를 분리하려는 시도다. 영화를 볼 때 우리의 의식은 줄곧 이미지와 사운드의 운동을 따라 함께 달려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이미지가 멈추고 사운드는 물 흐르는 소리 따위로 계속 이어진다면, 그 순간 모종의 단절이 발생하게 된다. 관객은 자신이 영화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동시에 다른 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나는 이것이 관습적인 영화의 주문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이 순간은 제시카가 픽션의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실은 이야기극일 뿐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불균질함이랄까. <아바타>와 같은 영화들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게 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가 영화와 현실 그 두 세계가 공존하며 소통하는 지대에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아름다운 체험이 될 수 있다.

- 당신의 미술관 작업들은 꽤나 정치적이지만 영화는 꿈, 환상, 기억, 신화와 같은 소재에 집중한다. 두 작업 사이에 어떠한 균형 감각이 있는가.

= 내 생각에 미술 작업은 굉장히 즉각적인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맞닥뜨리고 상호작용하는 일이며, 꽤나 개인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 때는 수많은 삶과 얽히게 된다.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미술 작업은 “이것이 내 목소리야”라고 말하는 느낌인 반면 영화는 좀더 집단적인 기억에 관한 것이다. 물론 영화에도 여전히 정치적인 것이 있지만 사회적인 기억, 성적인 규범과 얽혀 있다. 그러나 내가 미술 작업을 할 때는 굉장히 직접적으로 정치를 다룰 수 있다. 이를테면 ‘태국’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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