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기준 넷플릭스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1137만명으로(모바일인덱스) 2, 3위를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이지만 <오징어 게임>의 강풍 이후에도 지속적 성장세를 견인할 IP를 찾는 크리에이티브팀의 기준점은 더욱 비상해졌다. 그 가운데 한국 오리지널 영화가 출발선에 섰다. 사내 로맨스와 BDSM이라는 성적 취향을 접목한 <모럴센스>로 첫 번째 메인 투자작을 공개, 2022년 한해 총 5편의 영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선보였다. 종로의 넷플릭스 서울 오피스에서 김태원 디렉터를 만나 지난해 원년을 연 영화부문을 중심으로 성과와 새해 전망을 물었다. NEW/콘텐츠판다에서 콘텐츠유통과 해외 배급, 제작 투자를 두루 경험한 베테랑인 김태원 디렉터는 구독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지향하며 “2023년에 선보일 영화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 2022년 1월에 처음으로 메인 투자작인 <모럴센스>를 공개했다. 2016년 한국 진출 이후 6년 만이다. 5편의 오리지널 영화를 토대로 파악한 넷플릭스 구독자층의 선호도가 있었나.
= 넷플릭스가 실질적으로 기획·투자·제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해였던 만큼 작품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모럴센스>로 개성을 보여주면서 시작해 첩보물인 <야차>, 강렬한 액션인 <카터>, 그리고 극장에서도 잘될 법한 블록버스터인 <서울대작전>, 하이틴 로맨스인 <20세기 소녀> 순으로 구성했다. 특정 장르가 잘된다는 지표는 없었다. 어느 방향이든 구독자들의 즐거움과 제각기 다른 취향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멤버 조이’가 최우선 가치다. 특기하자면 <모럴센스> <20세기 소녀>는 한국 극장가에서 오랫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로맨스 장르였고 <카터>는 액션에 집중하는 규모와 과감함으로 승부했다. 2025년까지 슬레이트를 어떻게 구성할지 중요한 스터디가 됐다.
- <수리남>의 윤종빈, <글리치>의 노덕, <썸바디>의 정지우 감독 등 영화감독들이 2022년에도 첫 시리즈물 연출을 이어갔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등 영화감독의 시리즈물이 성공한 이후 달라진 업계의 반응이나 인식을 체감하는가.
= <킹덤>의 김성훈 감독, <D.P>의 한준희 감독, <지옥>의 연상호 감독 등 공통적으로 제작부터 마케팅까지 넷플릭스는 확실히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우선 창작적인 자유, 감독이 가진 비전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유연하게 예산을 열 수 있다. 일간에서 수익 배분에 대한 걱정도 나오지만 최대한 보장해드리기 위해 노력한다. ‘100년 후에 봤을 때도 영상 퀄리티만큼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기조로 4K, 돌비 애트모스에 맞추어 작업하는 후반작업 역시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마지막은 마케팅인데,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 역시 프로모션을 경험하며 대본 안에서 포인트를 짚어내 새로운 색을 입히는 우리 전략에 놀라워했다.
- 주로 영화부문을 책임지는 것으로 아는데, 2022년 마지막 드라마인 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를 담당했다.
= 영화 경력을 토대로 넷플릭스에 합류했지만 크리에이티브팀 내 역할을 영화, 시리즈 등으로 고정해두는 시스템은 아니다. 내가 <더 글로리> 이후 이병헌 감독의 시리즈 <닭강정>을 준비하거나 채널쪽에서 합류한 분들도 영화를 담당하는 등 점점 더 영화, 드라마를 교차하며 서로 다른 앵글로 바라보는 장점을 활용하려 한다.
- 2023년 주요 영화 라인업을 소개해달라.
= 연상호 감독의 SF 액션 <정이>는 거대 예산, 풀 CG영화라 어려운 프로젝트였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인 연상호 감독의 취향과 장기가 잘 구현됐다. <길복순>은 탄탄한 내러티브 안에서 킬러들의 액션이 강조되는데,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눈에 띄었던 것처럼 시퀀스별로 개성 있는 액션 신이 강조되어 시장의 반향을 일으킬 거라 본다. 배우 전종서의 원톱 액션물인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주인공이 변모해 남성들의 액션 무비와는 또 다른 액션의 경지를 보여준다. <승부>는 조훈현과 이창호라는 두 아이콘의 대결을 이병헌과 유아인 배우가 밀도 높은 연기로 완성시켰다. 바둑 코드가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 <독전2>는 극장 개봉작이었던 1편에 이어 속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는 첫 사례인데.
= 시리즈라곤 하지만 서사가 단절된 경우가 많은데 이건 그렇지 않다. 한효주 배우가 새로 합류하고 1편의 서사에서 미결이었던 부분이 확장되면서 이를 담아낼 액션과 비주얼의 사이즈가 커졌고 따라서 제작비도 증가했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처럼 극장 개봉한 1편에 이어 속편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한 케이스를 한국 오리지널에서 적용해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향후 오리지널 영화에 대한 투자 규모는 어떻게 예상하나. 제작비 상승에 대한 부담은 어떤가.
= 2016년 1월 넷플릭스의 서울 상륙 이후 콘텐츠에 약 1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정확한 액수나 투자작의 편수를 말하긴 어렵지만 투자의 질과 양은 매해 확장 중이며 현재 새로운 영화를 계속 찾고 있다. 공개 편수는 5~6편을 기준으로 해마다 조금씩 증감하는 추세가 될 것으로 본다. 극장, 플랫폼, 채널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쟁 과정에서 필연적인 제작비 상승이 일어나고 있기에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우리가 내린 판단은 이럴 때일수록 작품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제작비용이 있다면 과감하게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를 줄이지 말고 오히려 필요한 작품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모토다.
-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오징어 게임>의 대히트 등 지난 2~3년간의 변화 속에서 투자 기준의 새로운 역점이라 할 만한 것이 생겼을까.
= 역량 있는 작품에 반응이 몰리는 근본 패턴은 같다. 뷰 아워(누적 시청 시간) 기준으로 <카터>는 약 6500만시간이 나와서 2022년 넷플릭스 비영어 영화 중 역대 7위로 집계됐다.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글로벌 마켓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즉 가능한 한 다양한 장르를 여러 가지 형태, 또 여러 창작자들과 실험하는 것이 앞으로도 유효한 넷플릭스의 강점이 될 것이다.
- <로마> <아이리시맨>의 사례처럼 영화제에서 성과를 낼 만한 거장의 아트하우스 영화도 한국 오리지널로 필요하지 않을까.
= 글로벌 마켓에 알려진 몇몇의 주요 거장 감독보다 지금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젊고 유능한 감독들을 소개하는 방향이 우선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D.P.> 시리즈의 한준희 감독처럼. <발레리나>의 이충현 감독과 고현정, 나나 주연의 시리즈 <마스크걸>의 김용훈 감독 등이 넷플릭스를 통해 진가를 더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 OTT 시장의 포화 상황, 앞으로를 어떻게 전망하나.
= 중요한 건 OTT 이용자라고 해서 반드시 젊은 시청자층만 생각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중장년층, 실버 오디언스, 그리고 이미 내부에서 독립된 영역으로 운영하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키즈 애니메이션과 패밀리 콘텐츠까지 투자를 계속 확장 중인 것으로 안다.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실험성과 다양성이란 결국 이렇게 넓은 시청자층에 대한 판단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