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매체를 가지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누군가가 듣고 읽는다는 것은,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관심의 총량을 뛰어넘는 말과 글이 쏟아지는 시대에 누릴 수 있는 큰 행운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할 수 있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을 설득할 수 있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이 행운에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나의 말과 글을 듣는 의사소통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는 책임이다.
3년이 조금 넘게 이 지면에 글을 쓰면서 매번 부딪혔던 것은 (기술적 부족함도 있지만) 소시민적 두려움이었다. 이 말을 해도 될까,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그런 것들. 글을 쓰는 내내 공론장에 진입하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돌이켜보면 이 지면을 수락한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유튜브를 시작한 때부터 나는 이미 대중에게 공개된 공론장의 일원이었다. 그 사실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나서 독자의 반응이 오기까지 약간의 지연이 발생하는 지면보다는 즉각적인 반응, 때로는 악의적인 반응까지도 감당해야 하는 유튜브라는 매체가 직업적으로 더 익숙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를 마뜩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달려들어 악플을 다는 게 적잖이 지겨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써야 한다면 써야 하는 것을 써야 했다. 매번 그러지 못했다는 게 (적어도 나의 판단에는) 부끄럽다.
이 지면에 글을 쓰는 동안 너무 많은 죽음과 부조리가 있었다. 죽음도 부조리도 결코 쉽게 줄어들지는 않으리라. 인간의 역사를 수백년의 단위로 본다면 스티븐 핑커의 주장마따나 폭력성이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적어도 당장의 삶에서 그런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매주, 매해 보도되고 드러나는 죽음을 잊지 않고 기꺼이 어깨 위에 지는 것이다. 언젠가 이 지면에 썼듯 “죽음을 마음에 쌓고 또 쌓는” 것, 그리고 “잘 살아 있는 주제에 그 무게에 눌리는 오만한 짓은 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까지를 나의 최선이라고 썼으나, 그 최선에는 무게를 지려고조차 하지 않는 권력 가진 자들을 노려보는 것이 포함된다고, 뒤늦은 수정을 해야 할 것 같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늘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글쓰기가 쉬워지는 순간부터 그 글에서는 부패의 냄새가 나리라. 결코 쉽지 않았던 이 지면이 그래서 과분하게 감사했다. 이 감사와 이 부끄러움이 오래도록 나를 위축시키기를 바란다. 조심하며 쓰고 감수하며 쓰고 부끄러워하며 쓸 수 있기를. 오랜 시간 읽어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