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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역사와 진보

프랑스 자발적 임신중절 비범죄화의 두 주역, 시몬과 아니

한국의 국가 주도 가족계획사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 각 동네 보건소에서는 부녀자들에게 피임약 복용을 친절하게 안내했고, 피임 시술을 위한 의료 버스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혹시나 모를 손님을 맞았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에서는 1974년을 ‘임신 안 하는 해’로 지정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이렇게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시절,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피임약 복용이 터부시됐고 임신중절이 범죄행위로 처벌받았다. 이에 매년 80여만명의 여성들이 목숨을 건 불법 낙태를 했고, 이중 일부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74년 11월26일 당시 보건부 장관이었던 시몬 베유는 임신중절 합법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다음해 1월17일 드디어 임신중절을 비범죄화하는 법률, 일명 ‘베유법’이 채택된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서로 다른 주역을 내세워 스크린에 옮긴 두편의 영화가 12월 첫주 프랑스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첫 번째 작품은 에디트 피아프 (<라 비 앙 로즈>(2007))와 그레이스 켈리(<그레이스 오브 모나코>(2014)) 전기영화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올리비에 다앙 감독이 장기를 살려 완성한 <시몬, 세기의 여행>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불리며 2017년 타계 후 판테온에 안장된 시몬 베유의 전기영화로, 10월12일 개봉 이후 12월까지 총 21만51616명의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블랑딘 르누아르 감독의 <앵그리 아니>이다.

이 작품은 1974년 2월(그러니까 베유법이 국회에 제출되기 몇달 전에)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매트리스 공장 노동자인 아니(로르 칼라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재까지 프랑스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불법(!) 페미니스트 운동인 낙태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MLAC)의 활동과 이 단체가 베유법 채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는 작품이다. 다앙 감독이 양지에서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시몬 베유의 삶을 영웅적 시선으로 그렸다면, 르누아르 감독은 800장에 이르는 젊은 여성 연구자의 MLAC 관련한 박사 논문을 기초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을 바쳐 투쟁해온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1월30일 개봉한 <앵그리 아니>에 대해 현지 언론은 임신중절 수술 장면(영화 전반에 걸쳐 6번 나온다)이 그간 스크린에 그려졌던 끔찍한 낙태 클리셰를 파괴하는 ‘대중적 영화’라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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